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의 확대에 대한 미국의 비판, 옛 소련에서 실시된 선거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대한 미국의 소극적 지원 등은 부시-푸틴 시대의 나빠진 관계를 잘 보여 준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이 5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의 연설에서 러시아를 비난하며 양국 분쟁의 새로운 골격이 형성됐다. 미국은 크렘린이 민주개혁을 후퇴시키고 에너지를 주변국에 대한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우려해 왔다.
하지만 미국의 더 큰 이해가 걸린 이슈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이란의 핵 야망을 억제하려는 미국과 유럽의 노력에 대한 러시아의 방해,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점진적인 에너지 관계 확대다.
러시아는 중국이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서방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마저도 못마땅하게 여길 정도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석유 가격이 불러 온 외교적 갈등이다. 세계 2위의 석유수출국이며 최대의 가스 공급국인 러시아는 고유가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둘째, 이란이 핵계획을 진행시킬 경우 현재 120억 달러 규모의 부셰르 원전 공사를 맡고 있는 러시아 기업들이 새 원자로 건설도 맡게 될 것이다. 게다가 많은 크렘린 관리가 러시아 방산업체와 관련돼 있다. 러시아는 이란의 대표적인 무기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때 이란이 대응할 수 있는 방공무기를 팔았다.
셋째, 중국이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는 미국의 압력에 저항하는 것처럼 러시아도 서남부 접경 지역에서 불안정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이란 정권에 대한 압력을 약화시키기 원한다.
이론적으로는 러시아도 ‘핵 없는 이란’을 원한다. 하지만 크렘린은 국제적인 압력이 핵에 대한 이란의 야망을 누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란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미-러 분쟁의 또 다른 쟁점은 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확대다. 러시아는 최근 미국이 러시아의 WTO 가입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베링 해역의 가스전 개발에 미국 기업의 참여를 봉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중국 참여를 시사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상회의에서 푸틴 정부에 대해 노골적인 훈계를 해 이란 핵문제나 에너지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양보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크렘린에 통하지 않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70%대의 지지도를 얻고 있고 배럴당 70달러대의 유가로 막대한 수입이 굴러들어와 서방과 굳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나아가 많은 나라 정부가 그렇듯이 미국에 맞서는 것이 국내에서는 인기를 높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주인인 정상회의를 잘 마치기 위해 ‘서방 손님’들에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확신에 찬 러시아 정부는 서방에 대한 유화정책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면 그들은 계절에 맞지 않은 냉담한 대접을 받을 것 같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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