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유윤종]축제의 베를린, 탄식의 베를린

  • 입력 2006년 7월 13일 03시 00분


“우리는 베를린으로 간다(Wir fahren nach Berlin)!”

지난 한 달 남짓 독일 전역의 거리에서 울려 퍼진 구호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독일 월드컵 대표팀이 베를린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하리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베를린으로 왔다. 기대한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일요일인 9일(현지 시간), 베를린은 두 개의 축제를 치렀다. 저녁에 열린 월드컵 결승전과 정오에 열린 독일 월드컵 대표팀 해단식이었다. 베를린의 팬 축제 장소인 ‘6월 17일 대로’는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 찼다. 국기를 손에 꼭 쥔 아이들부터 온몸 가득 보디 페인팅을 한 토플리스 여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겁기 그지없는 모습들이었다.

한 달여에 걸친 축제를 마감하는 도시로 이보다 적당한 곳이 독일 안에 있을까. 교외지역과 위성도시를 포함해 4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이곳은 1999년 이래 독일의 ‘통일 수도’이자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 비견할 수 있는 독일 유일의 메트로폴리스다. 세 개씩이나 되는 일급 오페라극장과 교향악단은 이 도시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축제의 빛에 취하기만 해서는 이 도시가 안고 있는 그림자를 들여다볼 수 없다. 최근 베를린은 ‘재정 파탄’이라는 위험한 칼날 위를 걷고 있다. 통일 이후 도시기반시설 개선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지만 절대적으로 세수(稅收)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몇 년간의 거듭된 논란 끝에 대연정이 독일 ‘연방제’를 과감히 수술하겠다고 나선 데는 베를린의 파산을 막아야 한다는 탄원도 크게 작용했다.

왜 세금이 안 걷힐까. 천도 직후 기자가 찾은 브란덴부르크 문 일대에는 건설용 크레인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옛 서독 지역의 기업들이 대거 새 연방수도로 이전해 오면 부동산 붐이 일 것이라고 기대한 결과였다. 그러나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지금도 절반 가까이가 빈 상태로 남아 있다. 기업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원이 제대로 확보될 리도 없다. 지난해 베를린의 실업률은 19%로 독일 연방 소속 주 가운데 3위에 올랐다. 독일 평균치의 두 배에 가깝다. 가장 큰 이유는 제조업의 실종이다. 제조업 종사자 비율은 3%로 꼴찌에서 두 번째다.

꿈을 찾아 베를린으로 모여드는 사람도 많아 통일 이후 166만 명이나 이주해 왔다. 그러나 떠나간 사람도 160만 명이다. 절반에 가까운 주민이 교체된 것이다. 기존의 주민이 옛 서독 지역으로 떠나간 자리를 인근 옛 동독 지역 주민들이 채웠다. ‘베를린 시민의 절반은 뜨내기’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최근 독일 주간지 ‘차이트’는 베를린이 앞으로 선택할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퇴직한 연금생활자를 위한 라스베이거스형 리조트 도시’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남는 사람을 위한 각종 문화행사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병원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도 잘 정비돼 있다. 노인들이 전원생활을 좋아한다? 옛날 말이다. 대도시의 화려함 속에서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다.

1990년대 독일 정부가 베를린을 통일 수도로 선택하고 집중 투자를 펼친 데는 분명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옛 동독 지역의 중심에 있는 베를린을 활성화함으로써 동부 지역의 공동화를 멈추거나 최소한 지연시켜야 했다. 1871년 ‘첫 통일’ 이후 수도였던 베를린이 갖는 상징성도 도외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도시는 독일의 ‘영광’이 아니라 ‘숙제’가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유윤종 독일 특파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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