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최근의 중동정세를 얘기하며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실망스럽다는 태도를 보였고 블레어 총리는 시종 ‘꼬리치는 듯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블레어 총리는 미국이 중동평화협상을 본격 시작하기 전에 ‘멍석을 깔아주겠다’고 나섰지만 부시 대통령은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영국 스카이뉴스가 재생한 녹취록을 보면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부시=난 다른 사람들처럼 길게 얘기하지 않을 거야. 어떤 사람들은 너무 길게 얘기해…. 귀국해서 저녁에 할 일이 있는데 말이야.
(부시 대통령이 이런 불평을 늘어놓으며 한참 롤빵에 버터를 발라 먹고 있는 동안 블레어 총리는 부시 대통령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다른 정상들도 모두 식사 중이었다.)
▽부시=어이, 블레어. 잘 지내나?
▽블레어=뭐 그럭저럭….
▽부시=가려고?
▽블레어=아니, 아니, 아직….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문제를 가리키며) 그 무역 문제가 말이야….
▽부시=난 뭔가 진전이 있길 원해. 어젠 별 진전이 없었어….
(중략)
▽부시=스웨터 고맙네. 자넨 마음 씀씀이가 정말 놀라워.
▽블레어=뭘 그런 걸 가지고….
▽부시=자네가 직접 골랐다면서?
▽블레어=그럼 당연하지. (농담 삼아) 사실 내가 직접 짰어.
▽부시=(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무장세력 헤즈볼라가 즉각 교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제안을 가리키며) 그런데 그 코피의 태도 말이야. 정전(停戰)만 되면 나머지 문제도 다 잘될 것이라는 얘긴지 뭔지….
▽블레어=아니, 그게 진짜 어려울 거야. 내가 한번 그곳 상황을 봤으면 무척 좋을 텐데….
▽부시=콘디(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가 곧 갈 거야. 자네 제안을 콘디에게 얘기했어.
▽블레어=만약 멍석(ground)이 필요하다면 말이야…. 콘디가 가면 반드시 성공해야 하잖아. 하지만 나는 그저 얘기만 해도….
▽부시=알잖아. 그들(유엔)이 할 일은 시리아에 얘기해 헤즈볼라가 이런 형편없는 짓(this shit)을 그만두도록 막는 거야. 그러면 모든 게 다 끝나…. 코피에게 전화하고 싶어. 바샤드(바시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뭔가 되게 하라고 말이야.
▽블레어=어, 이거?
블레어 총리는 그제야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듯 당황한다.
방송이 나간 뒤 부시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을까.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대통령의 첫 반응은 ‘내가 뭐라고 했다고?’였다. 그래서 우리가 녹취록을 보여줬더니 그는 눈동자를 굴린 뒤 웃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부시 “고이즈미, 좀 얌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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