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 정적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지역당 당수를 총리로 지명했다. 두 사람은 2004년 대통령선거에서 격돌한 사이. 당시 중앙선관위는 집권당 후보이던 야누코비치 당수가 승리했다고 발표했으나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로 재선거 끝에 유셴코 정권이 탄생했다.
그런 유셴코 대통령이 불과 2년여 만에 야누코비치 당수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이로써 3월 총선 이후 계속돼 온 정치 불안은 일단 가라앉힐 수 있게 됐지만 시민혁명 정신의 퇴색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빛바랜 오렌지혁명=민심의 뜨거운 지지를 업고 집권한 유셴코 대통령이 ‘적과의 동침’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도 민심이었다. 3월 총선에서 유셴코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은 3당으로 밀려났다. 지역당이 제1당이 됐다. 혁명 이후 경제가 더 나빠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거기다 유셴코 대통령의 아들을 비롯해 측근들이 연루된 각종 추문이 오렌지혁명 세력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더욱 키웠다.
더욱이 유셴코 대통령은 혁명 동지였던 ‘오렌지 공주’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와 결별해 총선 참패를 자초했다. 티모셴코 전 총리가 이끄는 당이 유셴코 대통령의 우리우크라이나당을 제치고 제2당으로 부상한 것이다. 유셴코 대통령은 총선 후 뒤늦게 다시 티모셴코 전 총리를 총리로 지명해 오렌지혁명 세력의 재결집을 시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결국 유셴코 대통령은 야누코비치 당수를 신임 총리로 지명했다. 의회를 해산하고 재선거를 치르더라도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험난한 동거 정부의 앞날=극적인 대연정이 이뤄졌으나 얼마나 오래갈지는 의문이다. 지지 기반과 지역 노선 등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유셴코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계가 다수인 서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 친서방 정책을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 당수는 러시아계가 많이 사는 동부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자연히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지지하고 있다. NATO와 EU 가입에도 부정적이다.
새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념과 정책을 둘러싼 양측의 대립으로 심한 내부 갈등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동서로 분열돼 나라가 두 동강이 날 뻔했던 2004년 대선 당시의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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