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둥팡밍주’(東方明珠·상하이 푸둥을 상징하는 탑)를 꿈꾸는 쑤이펀허 자유무역지대=열차로 그로제코보 역을 출발해 통관 절차를 마치고 도착한 쑤이펀허.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구 2만여 명의 국경 소도시였던 이곳은 현재 인구도 5만 명이 넘고 시내 중심가는 밤이 깊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이 같은 발전의 비밀은 대부분의 간판이 중국어와 러시아어로 병기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러시아와의 교역에 따른 결과다.
중국과 러시아는 쑤이펀허와 파그라니츠니가 접하는 국경의 일정 구역을 ‘종합무역체(자유무역지구·이하 자유구)’로 조성해 이달 중순부터 운영에 들어간다. 말 그대로 극동의 ‘국제도시’가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지난달 찾아간 중국 쪽 자유구는 쑤이펀허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로 주변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완만한 분지에 들어서 있었다. 아직 국경 철조망이 남아 있는 러시아 쪽 자유구는 호텔 등 관련 공사가 한창이고 러시아 정교회 건물만이 완공된 상태였다.
중국 쪽 자유구 중 가장 핵심인 ‘스마오(世茂) 국제상품전시관’은 일종의 종합상가로 건물 내부 중앙은 3층까지 툭 트인 구조. 십자(十字) 모양으로 난 복도 통로를 따라 크고 작은 평수의 점포 200여 개가 잇달아 입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유구에서 양국 상인들은 일정한 증명서만 갖추면 수시출입이 가능하고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자유구의 총면적은 4.53km²로 중국 측이 1.53km², 러시아 측이 3km².
중국의 상하이스마오(上海世茂)그룹은 소개 책자에서 “북방의 둥팡밍주를 선점하라”고 소개하고 있다.
▽북한-중국-러시아 3각 무역 중심으로 부상하는 훈춘=중국은 훈춘(琿春)을 자유무역도시로 만들어 ‘북방의 홍콩’으로 만들 것이라고 홍콩 언론이 보도했다.
훈춘의 변경경제합작구는 훤히 뚫린 왕복 4차로 길과 반듯하게 정돈한 공장 터가 기업들을 부르고 있었다.
중국은 19세기 청나라가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겨주면서 막힌 동해로의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3월 북한 나진항의 50년간 이용권을 따냈다. 대신 훈춘∼나진항 간 도로 67km를 개보수해 주는 조건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민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훈춘 공산당의 한 관계자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몇 개 업체와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당 기관지인 연변일보의 관계자는 “이미 러시아 하산, 한국 속초 등과 교류하면서 성장한 훈춘은 앞으로 나진항까지 도로가 뚫리고 자유무역지대가 되면 북한과 연해주에도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 펌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훈춘 시 외곽에 자리한 변경경제합작구에는 올해 초 일본의 한 전자부품 업체가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에서 옮겨와 화제가 됐다.
합작구에 진출한 한국 내의업체 트라이(구 쌍방울)의 임채욱 부장은 “훈춘은 중국 동북 3성의 경제가 태평양으로 나가는 관문이 돼 성장 전망이 높다”고 말했다.
▽중-러 간 미묘한 온도 차=중국과 연해주는 국경도시 자유무역지대화, 도시 간 장거리 버스 노선 신증설 등 상호 경제협력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연해주는 중국과의 교류 증대로 중국경제권에 복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은 아예 ‘중국 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며 1000여 점포 대부분을 중국인이 운영하고 제품도 대부분 중국산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1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그리고 토지 등 부동산도 외국인에게는 49년간 장기 임대하지만 중국인은 제외다.
쑤이펀허·파그라니츠니=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극동 진출의 관문” 한국 업체들 잇단 노크▼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현대호텔 1층의 KT 현지법인 NTC(현지 이름 HTK) 영업매장. 이동통신 가입자 신청을 받는 이곳에는 국내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아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현지의 소규모 업체를 인수하며 진출해 2001년부터 가입자를 모집한 NTC는 올 6월 말 현재 현지 이동통신 시장점유율 39.5%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준철(36) 전략기획부장은 “통화품질 개선이나 서비스센터를 통한 고객 민원 사항 처리 등은 현지 러시아 업체들로부터는 받아보지 못했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연해주 간 한 해 교역 규모는 4억 달러 남짓하지만 연해주를 극동의 관문으로 삼아 진출하는 한국 업체들이 늘고 있다.
NTC 매장이 입주한 현대호텔(155실)도 1997년 개장 당시에는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현재는 대표적인 고급 비즈니스호텔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 LG전자 한국야쿠르트 롯데상사 등도 현지 판매법인을 통해 꾸준히 소비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LG전자 정재욱 과장은 “LG전자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러시아의 동서 거점으로 삼고 있다”며 “연해주는 멀리 이르쿠츠크까지 커버하는 극동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 속초∼러시아 하산 자루비노∼중국 훈춘 간 여객선과 화물선을 운영하는 동춘항운도 2003년부터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주 3회 연장 운항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9월 지사를 낸 것도 이 같은 한-연해주 간 교류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정재선 블라디보스토크 지사장은 말했다. 정 지사장은 “연해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500달러 안팎이지만 저축률이 낮아 가처분소득 비율이 높은데다 여름과 겨울 휴가가 각각 2주∼1개월이나 돼 관광산업의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해주에서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은 2001년 6991명에서 2005년 1만1502명으로 늘었다. 연해주로 가는 한국 관광객도 같은 기간 2928명에서 6907명으로 증가했다.
블라디보스토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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