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중도파가 보는 ‘한반도와 한미동맹’]<1>

  • 입력 2006년 8월 7일 03시 07분


《동아일보는 지난주 미국 워싱턴의 전현직 관리 및 학자, 싱크탱크 소속 연구원들에게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치우치지 않는 한반도 전문가’를 추천해 달라고 의뢰했다. 한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워싱턴에서조차 정파와 이념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는 한반도 문제의 중도적 해법, 균형 잡힌 진단을 듣기 위해서였다. 로버트 아인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 모턴 아브라모위츠 센추리 재단 고문,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정책수립 경험과 균형 잡힌 시각의 소유자로 꼽는 사람이 많았다. 아인혼 고문, 아브라모위츠 고문, 오핸런 선임연구원의 인터뷰를 차례대로 소개한다.》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차관보를 지내고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해 온 아인혼 고문도 노무현 정부의 ‘말과 정책’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수석변호인(chief defender)처럼 보인다고까지 말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보는 시각은 어떤가.

“한미 양국의 외교 실무자들은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관계를 수년째 깊이 관찰해 온 사람이라면 ‘양국 정부 간의 관계에 매우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상호 신뢰가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고위 관리들의 반응은 워싱턴에선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노 대통령은 북한보다 일본을 비판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한미 양국 모두 현 정권 아래서는 과거와 같은 상호관계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미국의 잘못도 있지 않은가.

“지난 수년간 미국의 일부 관리는 한국발(發) 소식에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물론 미 행정부의 공식 반응은 아니었다. 미 행정부 차원에선 비록 현재의 한국 정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동맹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 행동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일부 관리는 동맹의 중요성이 한국에서 평가절하되는 데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정책 실패 책임은 없는가. 한국의 고위 관리들은 최근 북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실패를 언급했는데….

“한국의 장관이 미국에 대해 실패했다고 말한 것은 잘못(mistake)이다. 가장 실패한 것은 분명히 북한이지 않은가. 그런데 노 대통령이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장관의 발언과 거리를 두거나 무시했으면 되는데 ‘어리석은 발언’을 더 강화해 줬다. 이 문제는 미국에서 공식 반응이 나온 이슈는 아니었지만 워싱턴에선 스스로 되물었다. ‘어떻게 동맹국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동맹 간에도 견해차,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신문의 헤드라인이 아니라 비공개 협상 테이블에서 터뜨려야 한다.”

―그 같은 발언들이 동맹관계의 근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나.

“지난 수년간 (동맹)관계에 상처를 입히는 행동들을 보아 왔다. 이번의 발언들도 그 발언만큼 상처를 더할 것이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책임이 크다. 주한미군 재배치 같은 문제에 있어 미국은 동맹국과 더 많은 협의를 거쳤어야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접근법은 워싱턴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너무 자주 북한의 수석변호인 역할을 맡는 것 같았고, 북한의 행동을 합리화해 줬다. 그 같은 상황의 전개는 한국을 좋은 동맹이라고 여기는 미국인들도 대부분 이해하기 힘들다는 심정을 갖게 만들었다.”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은 어떻게 평가하나.

“중요한 것은 한국이 북한에 어떤 신호를 보내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 북한에 대해 ‘우리는 대북 압박을 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며, 북한의 도발을 참아 줄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은 남북대화가 한국에서 갖는 중요성을 인정한다. 대화의 중단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 채택 이후 대북 접근은 더욱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 대북 협력, 특히 큰 규모의 현금 송금은 신중히 해야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지금의 궤도로 계속 나아간다 해도 한국과 중국의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선 안 된다. 만약 북한이 그런 코스를 계속 밟아 간다면 그들은 더욱 고립되고 한국과 중국도 더 많은 규제를 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대북 압박정책에 동조하면 한반도의 긴장이 더 고조되지 않을까.

“단기적으론 북한이 약간 거칠게 반응할 것이다. 한국을 겁먹게 하기 위해서다. 남북관계가 영구적으로 후퇴할 것이라고 걱정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의 인내심이 고갈됐음을 알게 되면 북한은 이제 자제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계속 현 궤도를 갈 경우의 비용과 궤도를 수정할 경우의 이익을 계산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 내에선 ‘주한미군은 미국의 이익에 필수적이다. 미국이 철수 운운하는 건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다’라는 인식이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와 국민이 원할 때만 군대를 한국에 주둔시킬 것이다. 만약 한국이 주둔을 원하지 않는다면 철수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 국민이 원하는지와 상관없이(indepen-dently)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킬 절실한 필요(integral need)를 갖고 있지 않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목표를 이룰 여러 가지 방법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양국은 주한미군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공유했다. 하지만 만약 한국이 공동의 이익이 더는 없다고 믿으면 미국은 떠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로버트 아인혼▼

△1969년 미국 코넬대 정치학과 졸업 △미 국무부 정책 담당 선임 고문(1986∼1992) △미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 (1992∼1999), 차관보(1999∼2001)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함께 방북, 김정일 두 차례 면담 △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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