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미국과 지정학적으로 밀접한 지역이면서도 반미(反美)·반제국주의 운동이 거세게 벌어져 온 곳이다.
▽중남미의 반미 지도자들= 반미의 중심에는 늘 카스트로 의장이 있었다. 미국은 자국 안보를 위해 이 지역에서 한편으론 좌파정권의 확산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좌파정권을 와해시키기 위해 직접적인 군사개입과 암살, 우파 군사 쿠데타 지원 등 각종 공작을 펼쳐왔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 전도사 체 게바라는 1967년 볼리비아에서 정부군에게 사살됐고,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은 1973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 쿠데타로 살해됐다.
하지만 카스트로 의장은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 최근 잇따라 들어선 좌파 정권 지도자들은 카스트로 의장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002년 군사 쿠데타를 막아 정권을 지켜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이 개입한 쿠데타라고 믿었다. 당시 카스트로 의장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카스트로 의장이 권력을 이양하고 신병치료에 들어가자 세계 최고의 낙차(979m)를 자랑하는 앙헬 폭포의 청정수를 보내며 "회복되는 대로 방문해 달라"고 말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역시 카스트로 의장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1980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공산혁명 1주년 기념식에서 처음 만났다. 카스트로 의장은 1995년 룰라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한 상파울루의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를 직접 방문했다. 200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당시엔 카스트로 의장이 룰라 후보 진영에 정치 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원주민 출신으론 처음으로 볼리비아 대통령에 선출된 모랄레스 대통령도 곧 고위급 위문사절을 쿠바로 보낼 예정이다. 그는 원래 13일 카스트로 의장의 80세 생일에 맞춰 쿠바를 방문해 코카 잎 가루로 만든 케이크를 선물할 계획이었다.
다니엘 오르테가 전 니카라과 대통령은 5일 밤 직접 쿠바를 방문했다. 그는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을 성공시켜 집권했으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콘트라 반군과의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실각했다.
▽누가 카스트로 뒤 이을까= 워싱턴포스트는 6일 카스트로 의장 이후의 반미 지도자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차베스 대통령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차베스 대통령 자신은 '제2의 카스트로'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카스트로 의장의 카리스마를 쫓아가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냉전 덕분에 전체주의적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무려 47년간이나 쿠바를 통치했지만 차베스 대통령이 예컨대 2045년까지 권좌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카스트로 의장은 일관된 반미 정책을 유지했지만 차베스 대통령은 반미와 반(反)세계화를 외치면서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벌이고 미국에 석유를 수출해 막대한 이익을 내는 등 명분과 정당성에서도 카스트로 의장에 뒤진다는 것이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이다.
김기현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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