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지시 겁주고…슬며시 손잡고… ‘에너지 외교’ 2題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2분


■러 “미국과 가스개발 관둘까봐”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를 차별하면 러시아는 에너지로 역습할 수 있다.”

러시아 서북쪽 바렌츠 해에서 가스 채굴을 주도하던 세계 최대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8월 들어 유력한 사업 파트너로 꼽히던 미국 석유회사들을 갑자기 냉대하고 있다.

바렌츠 해 가스는 미-러 에너지 관계의 중심축 역할을 해 왔다. 미국은 이 가스를 액체로 만들어 자국 시장으로 운반하기 위해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 굴지의 회사를 보내 가스프롬과의 컨소시엄 구성을 노렸다.

러시아도 2003년부터 미국 회사들의 가스 처리 기술과 자본을 도입해 해저에 매장된 가스를 쉽게 생산해 수출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 정부가 최대 주주인 가스프롬은 올해 8월 말까지 파트너를 선정할 계획이었다. 노르웨이와 프랑스 석유회사들이 파트너 선정 경쟁에 가세했지만 미 기업에는 밀려 있었다.

그러던 가스프롬이 “사업 파트너가 언제 결정될지 확실하지 않다”면서 미국 회사를 우대해 오던 그간의 방침을 재고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미국이 지난달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뒤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보류하자 러시아가 보복에 나섰다는 것이 러시아 주간지 ‘아르구멘트 네델’의 분석이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양자 협상만 끝나면 WTO에 정식으로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저작권 침해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며 최종 협상을 미루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일하는 한국가스공사 윤병철 부장은 “동시베리아 및 사할린 유전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회사가 많기 때문에 에너지 보복이 확대되면 경제 외적(外的)인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러 간 냉각 기류가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는 게 모스크바 외교가의 관측이다. 취약한 금융 시스템과 산업 기반 등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러시아가 미국과 맞대결을 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中 “인도와 석유동업 잘나가요”

해외의 에너지 확보를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여 온 중국과 인도가 다시 손을 잡았다.

중국 신화(新華)통신은 14일 인도 국영 석유천연가스공사(ONGC)와 중국석유화학(CPCC·시노펙)이 미국 ‘오미멕스 드 컬럼비아’사의 지분 50%를 8억 달러(약 7726억 원)에 공동 매입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ONGC와 CPCC는 11일 주식 교환을 위한 계약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양 사는 오미멕스 드 컬럼비아의 지분 25%씩을 보유하게 됐다.

오미멕스 드 컬럼비아는 남미의 에너지 탐사와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미국 7개 주에서 천연가스 유전을 확보하고 있는 ‘오미멕스 리소시스’가 그동안 지분 100%를 소유해 왔다.

해외 에너지 확보를 위한 양국의 공동 진출은 지난해 말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중국의 용과 인도 코끼리의 혈전’이라는 뜻에서 ‘용쟁상투(龍爭象鬪)’로 불려 온 양국의 에너지 쟁탈전이 협력과 상생의 에너지 동반자 관계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ONGC는 지난해 12월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함께 캐나다 석유회사인 페트로 캐나다로부터 시리아의 최대 석유회사인 알푸라트프로덕션컴퍼니(AFPC)의 지분 37%를 5억7300만 달러에 공동 매입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양국은 올해 초 해외 석유 공급원 쟁탈 과정에서 벌여 온 소모전을 마감하고 앞으로 입찰 대상에 대한 정보교환과 유전탐사 등 에너지산업 전반에 걸쳐 상호 협력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중국과 인도는 에너지 동맹을 맺기 전까지는 앙골라,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에콰도르 등지에서의 유전 확보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며 대부분 천문학적인 외환을 보유한 중국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양국의 과열경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턱없이 올라가면서 중국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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