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5년]“승객들 이젠 10분검색도 못참아”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8분


그날의 현장5년 전 9·11테러의 현장인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 당시 현장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참혹한 현장’을 이제는 볼 수 없고 개발계획이 진행 중이지만 당시 기억들은 여전히 도처에 남아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그날의 현장
5년 전 9·11테러의 현장인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 당시 현장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참혹한 현장’을 이제는 볼 수 없고 개발계획이 진행 중이지만 당시 기억들은 여전히 도처에 남아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 항공관제 최고 책임자였던 벤 슬라이니 연방항공청(FAA) 국장은 “군과의 협조체계가 원활하게 이뤄졌으면 추가 충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가 9·11테러 영화 ‘플라이트 93’에서 당시의 역할로 직접 출연한 모습. 사진 제공 UIP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 항공관제 최고 책임자였던 벤 슬라이니 연방항공청(FAA) 국장은 “군과의 협조체계가 원활하게 이뤄졌으면 추가 충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가 9·11테러 영화 ‘플라이트 93’에서 당시의 역할로 직접 출연한 모습. 사진 제공 UIP
그라운드 제로 입구에 붙어 있는 ‘여기, 9·11을 기억하며(here remembering 9/11)’라고 적힌 표지판. 뉴욕=공종식 특파원
그라운드 제로 입구에 붙어 있는 ‘여기, 9·11을 기억하며(here remembering 9/11)’라고 적힌 표지판. 뉴욕=공종식 특파원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 버지니아 주 연방항공청(FAA) 중앙 관제본부. 하늘을 나는 민간 항공기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이곳 레이더에서 비행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비행기 한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건물로 돌진한다. 실종 비행기들을 찾기 위한 숨 가쁜 추적이 시작된 직후 미국 항공 역사상 전대미문의 명령이 떨어진다. 미 영공을 날고 있던 모든 항공기를 착륙시키라는 것.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몇 분이 흘렀다. 그러나 4200여 대의 항공기는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근처 공항에 착륙한다.》

당시 항공기 추적 임무를 총괄했고 ‘예외 없는 착륙’ 명령을 내렸던 벤 슬라이니 FAA 국장은 4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납치범들이 승객을 ‘인간 미사일’로 삼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회상했다. 당연히 비행기가 건물을 향해 돌진한 이유도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를 떠올리며 간간이 목소리가 떨렸던 그는 “실종 비행기를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더 일찍 착륙 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사고 당일이 FAA 항공관제 최고 책임자로의 부임 첫날이었던 그는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 근무는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8일 국내에서도 개봉되는 9·11테러 영화 ‘플라이트 93’에서 당시의 역할로 직접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항공 시스템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보 공유가 향상됐다. 당시 미 정보당국은 비행기 납치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지만 내가 맡고 있는 조직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지금은 요주의 인물에 대한 신상정보와 예상 테러수법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당시 군과의 협조체계는 어땠나.

“FAA가 영공에서 항공기들을 ‘치우면’ 북미방공우주사령부(NORAD)는 납치된 비행기를 찾아내 유도 착륙시키거나 격추시키는 것이 임무였다. FAA 관제본부에는 항시 군 연락관이 대기하고 있어야 하지만 당시에 이 자리는 공석이었다. 군 지원을 요청했지만 세 번째 비행기가 국방부 건물에 충돌하고 나서야 이 요청이 NORAD에 전달됐다.”

―4000대가 넘는 비행기를 일시에 착륙시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강제 착륙이 가져올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승객 스케줄 차질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비행기가 연달아 WTC에 충돌하는 것을 보고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세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기 직전에 최종 결정을 내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직감했는가.

“두 번째 비행기가 WTC 건물로 돌진하는 것을 보면서 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공격 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실종 비행기의 소행인지 몰랐다. 두 번째 공격이 이루어진 뒤 비행기 실종과 충돌 사이에 ‘의도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9·11테러 이후에도 항공 테러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보는가.

“항공 침투는 가장 손쉽게 대량 인명피해를 낼 수 있는 테러 방식이다. 지난달에도 영국발 미국행 비행기에서 대형 테러 시도가 적발되지 않았는가. 이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9·11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공항 검색을 위해 기꺼이 2시간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10분도 참지 못한다.”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소감은….

“촬영 때 감독이 좀 더 흥분한 모습을 보이라고 해서 힘들었다. 양복 윗도리도 벗고 욕도 하라는 주문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영화보다 훨씬 차분했다. 긴박한 상황일수록 책임자는 침착해야 한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그라운드 제로’ 건물신축 한창…희생자 가족 아직도 현장지켜

‘왱∼ 왱∼ 왱∼.’

3일 오후 1시, 5년 전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WTC·쌍둥이빌딩)가 무너져 내린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 현장.

갑자기 소방차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쌍둥이빌딩 건설과 함께 설립된 ‘소방중대 10’에서 소방차가 출동하는 소리였다.

미국에서 소방차가 출동하는 일은 잦다. 그럼에도 주변에 있던 관광객과 뉴요커들은 눈에 띄게 긴장했다. 5년 전 발생한 테러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9·11테러 발생 5주년을 앞두고 3일 그라운드 제로를 찾았다. 미국에서는 다음 날이 노동절로 연휴여서 이곳은 당시 현장을 보기 위해 몰려온 관광객이 많았다.

그러나 참혹한 현장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현장을 둘러싼 철조망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 과거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는 사람들,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 곳곳에는 9·11테러 기념 사진첩은 물론이고 가짜 명품 핸드백과 티셔츠를 파는 잡상인이 즐비했다.

이제 미국인들은 9·11테러를 모두 잊은 것일까. 9·11테러 유가족과 전직 뉴욕 소방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기념센터(tribute center)’가 제공하는 ‘그라운드 제로 투어’에 참여했다.

이날의 가이드는 당시 목숨을 걸고 구조 활동에 참여한 전직 뉴욕 소방관 폴 맥패든(60) 씨와 그의 부인인 데니스(61) 씨였다.

맥패든 씨는 당시 사고로 친하게 지내던 동료 46명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5년 전 9월 11일도 오늘처럼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정말 기가 막힌 뉴욕의 가을 날씨였지요.”

지금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쌍둥이빌딩을 프리덤타워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또 기념박물관 건립도 올해 착공돼 2009년 완공될 예정이다.

맥패든 씨가 투어를 진행하다가 철조망 안에 있는 조그만 가건물을 가리켰다.

“9·11테러 희생자 가족센터입니다. 당시 테러에서 시신이 온전히 수습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시신의 일부조차 찾지 못한 가족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유가족 중에는 희생자 옆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서 뉴욕으로 이사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맥패든 씨는 당시 현장이 잘 보이는 근처 파이낸셜센터 2층 로비로 투어 참가자들을 안내했다. 2층 로비에 올라서자 그라운드 제로 전경이 보였다. 공사는 터 잡기 수준이었다.

맥패든 씨가 로비 아래쪽 줄이 그어진 땅바닥을 가리켰다.

“저기가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소방대책본부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쌍둥이빌딩이 붕괴되면서 소방관들이 한꺼번에 많이 희생됐습니다. 당시 뉴욕소방서 지휘부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지요.”

투어의 마지막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당시 테러로 희생된 회사 직원 11명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조형물이었다.

11면으로 가다듬은 수정을 중심으로 희생자 11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투어 도중 가끔씩 잡담을 하던 관광객들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이들은 회사 동료들이 희생자에게 전하는 짧은 편지들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 일부는 투어가 끝난 뒤에도 맥패든 씨 부부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다.

연휴를 맞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뉴욕에 왔다는 맥심 켈리(55) 씨는 “테러 현장에 와 보니 느낌이 너무 새롭다”며 “쌍둥이빌딩이 두 차례 테러 공격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미국에 대한 공격이 또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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