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마케팅…조니워커, 레바논 광고에 전쟁 암시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9분


끊어진 다리를 건너뛴 뒤 꼿꼿이 활보하는 한 남자.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 옆에 적힌 문구는 ‘계속 걸어가십시오(keep walking)’.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벗어나 북쪽으로 가다 보면 이 ‘조니 워커’ 위스키 광고(사진)와 마주치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5일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길’을 가는 이 광고를 주목했다. 민감한 국제분쟁 문제를 마케팅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다국적기업들의 전반적인 추세이기 때문.

조니 워커 위스키와 기네스 맥주를 생산하는 영국 주류업체 디아지오의 대변인 알리시아 테트로 씨는 “디아지오는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레바논의 조니 워커 광고는 ‘앞으로 나가자’는 현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광고를 제작한 다국적 광고대행사 레오 버넷의 중동 담당 최고 디자인 고문 파리드 체하브 씨도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사기 진작’을 위한 광고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광고는 지금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반영해야 하며 최근 레바논 사태와 같은 ‘커다란 변동’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다국적기업과 광고회사는 글로벌 마케팅을 위해 부드러운 감성에 바탕을 둔 광고를 제작해 배포한다. 그러나 디아지오는 이와 대비되는 ‘글로벌 로컬(global local)’ 광고 전략을 채택했다. 전 세계에 적용되는 하나의 주제는 갖되 지역에 맞춰 각기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레오 버넷 측은 올여름 레바논에 폭탄 투하가 시작된 직후 광고 제작을 시작했고 7월 말부터 현지 신문에 광고를 실었다.

레바논인은 이 광고를 다양하게 ‘읽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 광고를 조니 워커의 캐릭터가 텅 비어 있는 자동차의 연료 게이지를 따라 걷고 있는 것으로 봤다. 레바논 봉쇄 조치로 연료가 부족해 주유소에서 긴 줄을 서야만 했던 일이 떠올랐다. 다른 이는 이스라엘의 총공격으로 인한 대규모 탈출 행렬을 연상했다.

이 신문은 다국적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소비자의 기억에 잘 남지도 않는 광고에 수백만 달러씩을 쓰고 있지만 레바논의 조니 워커 광고는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 급속하게 전파되면서 5만 달러도 되지 않은 제작비에 비해 큰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1
  • 화나요
    1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1
  • 화나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