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왕실 ‘41년만의 아들’]日王, 손자에 劍 하사

  • 입력 2006년 9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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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아들 출산” 日열도 들썩아키히토 일왕의 둘째 며느리인 기코(39) 왕자비가 6일 도쿄 아이이쿠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출산했다. 이날 태어난 아기는 나루히토 왕세자와 아키시노노미야 왕자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돼 일본 왕실의 부계 적통을 잇게 된다. 일본 왕실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난 것은 41년 만의 일이다. 아사히신문 호외를 받아든 시민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왕실 아들 출산” 日열도 들썩
아키히토 일왕의 둘째 며느리인 기코(39) 왕자비가 6일 도쿄 아이이쿠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출산했다. 이날 태어난 아기는 나루히토 왕세자와 아키시노노미야 왕자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돼 일본 왕실의 부계 적통을 잇게 된다. 일본 왕실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난 것은 41년 만의 일이다. 아사히신문 호외를 받아든 시민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새로 태어난 왕손께서 ‘응애’하고 말씀하셨습니다.”

6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비 기코(紀子) 여사와 왕손의 첫 대면 장면을 왕실의무관이 이렇게 전하자 이를 보도하던 방송 진행자들조차 폭소를 터뜨렸다.》

▽열도 축하 물결=이날 왕실에서 들려온 41년 만의 아들 탄생 소식에 일본 열도 전체는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신문마다 발 빠르게 호외를 뿌렸고 석간들은 ‘오늘, 이 생명에 감사’, ‘기다렸던 이 울음소리’, ‘기다렸던 낭보에 열도가 축하’ 등으로 주요 지면을 채웠다.

TV 방송도 이날 새벽부터 왕자비가 입원한 병원과 궁내청 현장에서 번갈아 가며 생방송을 내보냈다. 영국 BBC방송이 ‘It's a Boy’라고 톱뉴스로 보도한 것을 비롯한 해외 언론의 반응도 속속 전달됐다.

또 도쿄(東京) 시내 니혼바시(日本橋)의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을 비롯해 곳곳에 왕손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도쿄 시내 전철역 앞 광장에서는 인근 유치원생들이 잉어 모양의 ‘고이노보리 연’(남자 아이들의 성장을 빌기 위한 일본 풍습)을 띄웠다. 도쿄 시내 긴자(銀座) 거리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장난감을 무료로 나눠 주는 행사가 벌어졌다. 주식시장에서는 출산 관련 업체의 주가가 급등했다.

한편 공무로 홋카이도(北海道)를 방문 중인 아키히토(明仁) 일왕 내외는 투숙 호텔에서 아키시노노미야 왕자에게서 직접 소식을 듣고는 “안심했다, 관계자들에게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일왕 부부로서는 손녀 셋에 이은 첫 손자. 일왕은 이날 첫 왕실 의식으로 손자에게 보신용 검(劍)을 하사했다. 이름은 7일째인 12일 붙여지게 된다.

이날 기자회견을 한 왕실의무관은 왕자 부부가 출산 직전까지 “어떤 결과이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며 태아의 성별을 알려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비롯한 정계 인사들도 입을 모아 축하 인사를 했다.

▽왕실전범(典範) 개정 보류=일본 정부는 이날 모계 및 왕녀의 왕위 승계를 인정하도록 추진해 온 왕실전범 개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신생아가 현 왕실전범에 의해서도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됨으로써 당분간은 ‘남계’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것.

왕위 계승 서열 등 왕실의 제도를 규정한 왕실전범은 메이지(明治) 시대에 정해진 것으로 왕위 계승에서 ‘남계의 남자’만을 인정하고 있다.

왕실의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한 일본 정부가 지난해부터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딸인 아이코(愛子·4)공주의 왕위 계승을 염두에 두고 왕실전범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2월 기코 왕자비의 임신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의가 일단 중단됐다.

왕실전범 개정 문제는 ‘천황제’에 대한 태도와 맞물려 있어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인사들은 지켜야 한다는 완고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도 신중한 자세다. 그는 이날 출산 소식을 듣고 측근에게 “이걸로 왕실전범 논의는 미뤄도 된다”고 말한 걸로 알려졌다. 사실상 안 해도 된다는 뜻.

그러나 이번에 남아가 한 명 태어났다고 해서 왕위 계승의 안정성이 확보된 것으로 장담하기는 어렵고, 남계 계승만을 고집하는 것은 외국의 왕실을 보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또 현 왕실전범대로라면 공주들은 결혼하면 모두 왕실을 떠날 수밖에 없어 왕실은 갈수록 빈약해진다는 점에서 관련 논의는 때가 되면 재개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화보]日 왕실 ‘41년만의 아들’…열도 축하 물결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세계의 왕위계승 제도▼

주요국의 왕위 계승 제도
구분나라
형제간에는 남자 우선덴마크
스페인
영국
남녀 불문 장자 우선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남계 남자만 인정일본
요르단
남자 중에 왕이 지명태국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 일가가 지난달 요양을 위해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현지 언론은 마사코(雅子) 왕세자비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한 민영TV는 “남자아이를 낳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본 왕실의 전통과 보수적인 정치압력 때문에 마사코 비가 고생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본처럼 남계(男系)의 남자만 왕이 될 수 있게 하는 나라는 드물다.

일본 역사만 보더라도 1762∼1770년 재위한 고사쿠라마치(後櫻町) 여왕 등 8명의 여왕이 있었다. 여성의 권리라는 점만 보면 일본의 현 왕실전범은 시대를 거꾸로 간 셈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등은 당초 남자에게만 왕위 계승권을 줬으나 1970∼1990년대에 잇달아 규정을 바꿔 남녀를 불문하고 첫 번째 자녀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1975년 프랑코 장군이 사망한 뒤 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한 스페인은 1978년 헌법을 제정해 남자우선원칙을 정했으나 여왕도 인정하고 있다. 왕이 왕족 남자 중에서 후계자를 지명하게 돼 있는 태국에서도 왕이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채 타계했을 때는 왕녀가 뒤를 이을 수 있다.

왕위 계승권을 ‘남계의 남자’에게만 한정하다 보니 계승권자 수가 너무 적다는 것도 일본 왕실의 고민이다. 기코 왕자비가 아들을 낳기 전 왕위 계승권자는 6명에 불과했고 연령도 40대가 2명, 50대 60대 70대 90대가 각각 1명으로 고령자가 너무 많았다. 이에 비해 여왕을 인정하는 전통이 오랜 영국의 경우 왕위 계승권자가 4000명이 넘는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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