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5주년]‘안보’ 한마디면…

  • 입력 2006년 9월 11일 03시 05분


#“수감자들이 미군에 대항해 ‘비대칭적 전쟁(asymmetrical warfare)’ 행위를 했다.”

미군의 관타나모 수용소장은 올해 6월 수감자 3명이 목을 매 자살하자 이렇게 발표했다. 수감자의 자살마저 적대적 전쟁 행위라는 것이다.

#“곡물과 가축은 미국의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에 필수적인 만큼 농업 보조금 지급은 계속돼야 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 초 전국목축업협회 연설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부시 행정부는 농업 보조금 지급에 회의적이었다. 농산물 수입국들이 내세우던 ‘식량안보론’이 하루아침에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의 논리로 돌변한 것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 ‘국가안보’는 미 행정부가 어떤 정책이든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이 됐고 행정부는 이에 의지해 진실을 감추는 왜곡된 논리와 표현들을 양산했다.

케이토연구소의 티모시 린치 국장은 최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논문에서 이런 현상을 ‘이중언어(doublespeak·눈속임 거짓말)’로 규정하고 9·11테러 이후 미국 사회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비유했다.

오웰이 묘사한 감시사회 곳곳에는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노예 상태다’ ‘무지는 힘이다’ 같은 포스터 구호들이 나붙어 있다. 오웰은 이런 구호들을 ‘신언어(newspeak·기만적 표현법)’와 ‘이중사고(doublethink·모순적인 두 생각을 동시에 용인하는 것)’라고 이름 붙였다.

미국 헌법은 사유재산의 압수수색을 위한 영장 발부와 집행에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른바 ‘국가안보증서(national security letter)’라는 유령 문서를 근거로 거침없는 압수수색을 해 왔다. 연간 발행 건수가 3만 통에 이른다.

미국은 테러 용의자를 영장 심사도 없이 군 영창에 구금한 뒤 ‘범죄자(criminal)’가 아닌 ‘적 전투원(enemy combatant)’으로 부르며 변호사의 접견도 금지했다.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리자 이들의 신분은 ‘불가피한 안보 수감자(imperative security internee)’로 바뀌었다.

9·11테러 이후 생겨난 ‘국토안보(homeland security)’라는 단어는 예산 따내기 만능 키워드였다. 에어컨이 달린 청소트럭 구입에 25만 달러, 알래스카 노스폴의 통신장비 구입에 55만 달러 등 이상한 예산들이 ‘국토안보’라는 명목으로 지출됐다.

린치 국장은 “부시 대통령은 테러의 반대말로 자유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하지만, 그는 ‘자유’를 ‘행정부 권한을 제한하는 장애물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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