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5주년]미국판 ‘그때 그사람들’ 파문

  • 입력 2006년 9월 11일 03시 05분


미국 ABC방송이 10, 11일 밤 방영 예정인 9·11테러 소재 2부작 다큐드라마 ‘9·11로 이르는 길(The Path to 9·11)’의 방영을 앞두고 미국 사회가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5시간 분량의 이 드라마는 미 의회 ‘9·11위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1부에서 ‘빌 클린턴 전 행정부의 무사안일과 관료주의가 9·11테러의 씨앗을 배태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주인공은 미국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던 중 관료주의의 벽에 걸려 좌절해 사직하고 세계무역센터 경비 책임자로 일하다 9·11테러로 숨진 실재 인물인 존 오닐.

내용이 처음 공개된 7월 시사회 직후엔 별 다른 반응이 없었으나 9·11테러 5주년을 앞두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샌디 버거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고위 관리들과 민주당 지도부가 총동원되다시피 해 방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8일 “9·11위원회에서 사실로 확인한 것들과 직접적으로 모순되는 장면들을 방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드라마 속에서 안 좋게 묘사된 워싱턴포스트도 ABC에 항의하면서 비판적인 비평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진보진영 쪽에선 ABC가 월트디즈니사 자회사인 점을 들어 보수진영의 음모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ABC는 9일 “워싱턴포스트 관련 대목을 포함해 실명이 너무 분명하게 언급된 몇몇 장면을 삭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ABC는 “이 드라마는 오락물 제작팀이 사실과 허구를 섞어 만든 것”이라며 방영 강행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민주당 측의 반발이 워낙 거센 탓에 ABC는 드라마 광고주를 1개 회사밖에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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