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차관보, 北 금융제재 해제 요구에 180도 바뀐 대응

  • 입력 2006년 9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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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협상가다. 하지만 북한과 도저히 협상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바로 다음 날 (압박 또는 제재로)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 노력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담당하는 한 당국자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 당국자의 예견대로 힐 차관보가 단호해졌다. 온화한 이미지로 대표적인 미국내 비둘기파로 알려졌던 힐 차관보는 11, 12일 이틀간의 방한에서는 마치 최후통첩을 하러 온 저승사자 같은 모습을 남기고 돌아갔다.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자리에서 힐 차관보는 북한이 1년 이상 집요하게 요구해 오고 있는 금융제재 해제에 대해 “하찮은 사안(small issue)”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전에 힐 차관보는 “금융제재 문제는 6자회담과 별개의 문제”라거나 “6자회담에 복귀하면 논의해 볼 수 있다”라는 식으로 신중하게 반응해 왔다.

북한에 대해 사실상 희망을 접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고 싶어한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 같은 희망이 미국 외교정책의 기본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힐 차관보는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말해 대북제재의 고삐를 단단히 죄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힐 차관보가 냉정해진 데는 5∼10일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북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면담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한 것과도 관계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힐 차관보의 단호해진 태도는 북한의 태도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자 압박을 통한 북한 다루기에 한사코 반대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7월 방한했던 힐 차관보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불발로 끝났다.

일각에서는 14일 열리는 한미정상회담과의 연관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노 대통령이 핀란드에서 “(북한 대포동) 미사일이 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 초라하다”며 미국의 대북제재 움직임에 반대하는 선수를 치자 한국 정부관계자와의 면담을 통해 ‘제재는 불가피하다’고 못을 박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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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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