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소녀 오리아나 팔라치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 여기자 겸 소설가. 팔라치(사진) 씨의 몰아붙이는 듯한 공격적인 인터뷰 기법이나 베트남 및 중동 등에서의 종군 기자로서의 활약은 그를 언론계의 ‘전설적 존재’로 만들었다.
그가 15일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현지 언론들은 수년 전 암이 발병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던 그가 76세를 일기로 운명했다고 전했다.
그가 1976년 당시 미 국무장관으로 세계무대를 누비던 헨리 키신저 씨를 ‘무기력’하게 만든 인터뷰 일화는 유명하다.
지치지 않고 묻고 또 묻는 그 앞에서 외교적 수사만을 반복하던 키신저 씨도 결국 하나둘씩 속내를 털어놓았고, 훗날 “팔라치 씨와의 인터뷰는 ‘내게 가장 후회스러운 언론과의 접촉”이었다고 술회했다.
세계 최초로 이란 혁명의 아버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의 인터뷰에 성공한 그는 그와 마주앉은 뒤 차도르를 벗어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그리스의 민주화 인사 겸 시인이었던 알레코스 파나굴리스와 한때 연인이었으며 그가 1979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뒤 ‘한 남자’라는 저서를 그의 영전에 바친 바 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