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군부 쿠데타로 정국 혼미… 국왕 추인이 관건

  • 입력 2006년 9월 20일 11시 28분


태국 군부가 무혈 쿠데타로 탁신 친나왓 총리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했다.

쿠데타 지도자인 손띠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은 20일 거사 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달 초까지 임시헌법 초안을 마련하고 새 의회가 구성되면 새 총리도 임명될 것"이라며 "2주 안에 임시총리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10월쯤 다음 총선이 치러질 것이라며 향후 1년 안에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날 새벽 쿠데타군은 의회와 내각 헌법재판소를 해산하고 '민주개혁 평의회'를 구성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태국의 한국 2만여 명의 교민 사회는 관광업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지만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주태국 한국대사관 이문국 영사는 "교민들이 별다른 불안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준비 치밀, 전격 거행=손띠 사령관은 "갈등 치유와 국민 화합을 위해 쿠데타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태국에서는 1월 탁신 총리 일가의 부패 의혹이 제기된 후 대규모 항의 시위와 야당의 총선 거부 등 정국 혼란이 계속돼 왔다.

쿠데타는 3군과 경찰이 모두 가담했고 탁신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전격 단행됐다. 탁신 총리가 미국 뉴욕에서 손띠 사령관을 해임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이미 늦었다. 쿠데타군이 이미 방송국을 점령해 탁신 총리의 조치는 국민에게 전달되지도 못했다.

쿠데타 지도부는 거사 직후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알현한 뒤 바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쿠데타군의 속전속결식 국정 장악으로 탁신 총리 측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했다. 총리 가족과 일부 측근들은 서둘러 국외로 도피했다.

일각에서는 손띠 사령관이 푸미폰 국왕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국왕이 사전에 군부와 교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손띠 사령관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 약 2주전부터 추진했다"며 국왕과의 교감설을 부인했다.

쿠데타 지도부는 4개 군관구사령관들에게 해당 지역의 행정을 장악하도록 했다. 탁신 총리의 주요 지지계층인 지방 농민들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외신들은 임시공휴일인 20일 수도 방콕은 평소처럼 평온하지만 집회 금지와 언론 검열로 긴장돼 있다고 전했다.

▽새 실권자 손띠 장군은?=손띠 사령관은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소수계인 이슬람교도로는 처음으로 군부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 1969년 사관학교 졸업 후 줄곧 야전에서 직업군인의 길을 걸어온 그는 푸미폰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군부 내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각한 탁신 총리와는 사이가 나빴다. 전 인구의 4%를 차지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주로 사는 태국 남부지방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를 놓고 손띠 사령관은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 탁신 총리는 강경 진압을 각각 앞세웠다. 그 결과 2004년 1월 이후 이 지역에서 14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탁신 총리 암살 음모가 사전에 드러나 고위 장교 5명이 체포되자 손띠 사령관이 배후에 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 때문에 손띠 사령관이 수사의 칼날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손띠 사령관은 탁신 총리의 부패 스캔들로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이 나라의 문제가 국왕 폐하를 슬프게 만들고 있어 폐하의 군인으로서 걱정을 덜도록 도와주고 싶다"며 쿠데타를 암시하기도 했다.

김기현기자 kimkihy@donga.com

태국 푸미폰 국왕 쿠데타 승인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은 20일 오후 9시(현지시간) TV방송을 통해 군부의 쿠데타를 승인하고 모든 국민은 쿠데타 지도부를 따르라고 지시했다. 아둔야뎃 국왕의 쿠데타 승인은 19일 자정 군부 지도부가 국왕을 알현한 뒤 21시간반 만에 나왔다. 이로써 손띠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이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향후 정치 일정이 추진력을 얻게 됐다. 손띠 총사령관은 다음달 초까지 임시헌법 초안을 마련하고 2주 안에 임시총리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또 망명객 신분으로 전락한 탁신 전 총리는 재임시 저지른 부정으로 처벌될 가능성도 커졌다. 손띠 총사령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탁신은 재임기간 중 저지른 부정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부정축재로 모은 재산은 법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태국 군부 쿠데타 일지

태국에서는 1932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19차례의 쿠데타와 쿠데타 기도 사건이 발생했다.

육군 총사령관인 손티 분야랏글린 중장이 이끄는 태국 군부는 19일 밤(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단행, 외유 중인 탁신 치나왓 총리 정부를 몰아내고 국정을 장악했으며 이 과정에서 저항과 충돌사태는 없었다.

다음은 영국 BBC 방송이 정리한 태국의 주요사건 및 군부 쿠데타 일지.

△1782년= 라마왕 Ⅰ세, 차크리 왕조 시작, 시암국 건설

△1868~1910년= 출라롱콘왕 재위. 시암국 행정 및 상업 근대화, 철도망 건설

△1917년= 1차 세계대전에 영국 동맹국으로 참전

△1932년= 절대군주 프라잣히포크왕에 반발, 무혈 쿠데타 발생. 입헌군주제 도입

△1938년= 군부 지도자 루앙 피분 송크람 총리 취임

△1941년= 일본군 진주. 일본군의 영국령 말레이반도와 싱가포르, 버마 진출 수락

△1942년= 영국과 미국에 전쟁 선포. 그러나 주미 태국대사, 이에 불응해 미국 정부에 선전포고 전달거부.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료로 라오스. 캄보디아. 말라야에서 퇴각. 망명했던 아난다 국왕 귀국

△1946년= 아난다 국왕 피살

△1947년= 군 쿠데타로 피분 송크람 재취임. 군부집권 1973년까지 지속

△1965년= 베트남전 기간 자국 내 미군기지 허용. 베트남 파병

△1973년= 방콕서 학생 주도 40만 명 시위로 군부정권 실각, 자유선거 실시. 그러나 정정 불안 지속

△1976년= 군부 재집권

△1978년= 새 헌법 공표

△1980년= 프렘 틴수라논다 장군 집권

△1983년= 프렘 군지위 포기 후 민간인 신분으로 전환

△1986년= 선거에서 민선 정부구성

△1988년= 차티차이 춘하벤 장군, 선거 통해 프렘 후임으로 당선

△1991년= 1932년 이후 17번째 군부 쿠데타 발생. 민간인 아난 판야라춘 총리 취임

△1992년= 3월 선거로 아난 판야라춘 대신 수친다 크라프라윤 장군으로 교체, 반(反) 수친다 크라프라윤 시위, 사임요구. 아난 판야라춘 잠시 재집권, 9월 선거로 추안 리크파이 총리로 선출.

△1995년= 정부 붕괴, 태국 국민당 반한 실파-아르차 총리로 선출

△1996년= 반한 내각 부패혐의로 사퇴. 차왈릿 용차이윳 총리 선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발생. 치왈릿 용차이윳 총리 사임 후 추안 리크파이 총리로 재선출

△2001년= 탁신 치나왓 총리 선출

△2005년= 탁신 총리 두번째 임기 시작

△2006년 9월19일= 군부 쿠데타 발생, 국정 장악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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