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일본 전후 최연소 자민당 총재 당선

  • 입력 2006년 9월 20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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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동아일보
자료사진 동아일보
일본의 차기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51) 관방장관이 제 21대 총재로 선출됐다.

아베 장관은 20일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전체 703표(국회의원 403, 당원 300표) 가운데 464표를 얻어 경쟁 후보인 아소 다로(麻生太郞·66) 외상과 다니가키 사타카즈(谷垣楨一·61) 재무상을 큰 표차로 물리쳤다.

아소 외상은 136표, 다니가키 재무상은 102표를 각각 얻었다.

아베 신임총재는 26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 이은 제 90대 총리로 선출된 뒤 곧바로 새 내각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아베 총재는 전후 세대로는 첫 총리이자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다.

그는 이날 당선 인사를 통해 "첫 전후 태생 총재로서 이상(理想)의 불꽃, 개혁의 횃불을 이어받아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치명문가의 세습 정치인인 아베 총재는 고이즈미 총리에 의해 일찌감치 후계자로 발탁돼 관방 부장관, 자민당 간사장, 관방장관을 역임하며 '총리 수업'을 받아왔다. 특히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 대북 강경대응 주장으로 인기를 얻어 일약 '총리감'으로 떠올랐다.

앞으로 그는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의 개정을 추진하며 전후의 오랜 금기를 깨고 일본의 국가 위상을 세우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 면에서는 미일 동맹 중심의 외교를 계속하면서 대북 압박을 기치로 '강한 일본'의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로 악화된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호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니그마(enigma)'.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이렇게 부제를 달았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란 뜻이다.

평화헌법 개정과 교육개혁 등의 기치를 내건 보수색 강한 '아베 일본호(號)'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전후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젊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그가 이끌 일본호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국내외에서는 경계와 기대가 엇갈리는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강한 일본', '보통국가 일본'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아베 총재는 그간 역사 인식 등에서 보수 우익과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을 많이 해 왔다.

여기에는 아베 총재가 전쟁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자유로운 전후 세대라는 점에,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영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시 전 총리는 태평양전쟁의 최일선 활약으로 패전 뒤 A급 전범으로 단죄 받았으나 석방된 뒤 총리까지 오른 인물.

아베 총재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싸우는 정치가'를 자신의 상표로 내세웠다. 정권구상에서도 5년 이내 개헌을 목표로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개헌과 함께 그가 힘을 쏟는 것이 '교육헌법'이라 불리는 교육기본법 개정. 애국심 함양을 강조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내셔널리즘을 부추길 수 있다며 야당 측의 강한 반발을 샀던 법안이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 등 역사인식에서 주변국과의 마찰도 예상된다. 정책구상 중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인도 호주와 함께 전략협의체를 만들어 중국을 포위한다는 구상에서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관점마저 내비친다.

대북 강경카드로 인기를 획득한 그답게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시작해 앞으로 취할 대북 강경자세의 신호탄을 이미 쏘아 올렸다.

▽한국 중국과의 관계개선은?=다른 한편으로 아베 총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정상 간 대화부재' 상태가 지속되는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태세다. '아시아 외교 실패'라는 고이즈미 정권의 오점을 이어가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

이를 위한 한국 및 중국과의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도쿄(東京) 외교가에서는 아베 총재 측이 11월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이라도 '만나만 준다면 깜짝 방한 또는 방중을 하겠다'고 제안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그러나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을 전망. 아베 총재가 정상회담을 촉구하면서도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지를 약속하지도, A급 전범 분사 등의 대안 조치도 실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

아베 총재는 야스쿠니 문제를 놓고는 "갔는지 안 갔는지, 갈 건지 안 갈 건지 말하지 않겠다"는 '애매모호 전술'로 일관하고 있다.

어찌됐건 올 4월의 비밀참배로 아베 총재는 적어도 내년 하반기까지 시간을 벌어 놓은 셈. 일본 외무성이 한국 및 중국 측에 "적어도 내년 여름까지는 참배를 하지 않을 것이니 정상회담을 하자"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러나 한 외교가 소식통은 "아베 총재가 내년 여름 이후 참배를 한다면 매년 참배한 고이즈미 총리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는데, 중국이나 한국이 그런 제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귀공자 정권=아베 총재 인기의 시작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이었다. 납치 피해자모임의 요코타 시게루(橫田玆) 씨는 "다른 정치가와 달리 우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우려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베 총재 측이 그들의 덕을 입었다. 그는 납치 피해자 문제에서 단호하게 대응해 일약 차기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정치명문가 출신이라는 점도 그를 반석에 올리는 데 한몫했다. 특히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은 총리의 자리를 눈앞에 두고 1991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 일본인들의 마음에 부채감을 남겼다.

아베 총재와 내년 참의원 선거를 놓고 일전을 불사할 수밖에 없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조차 최근 "세 후보 중 '신타로 씨의 아들이 (자민당 총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당대인들의 아쉬움은 컸던 듯하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의원은 "인기가 높으니 당내 지지도와 주목도가 높아지고, 그러다 보니 다시 인기가 올라가는 '상승작용'이 일어났다"고 평했다.

이런 아베 총재의 역량에 대한 평가는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내려지게 된다. 민주당은 이 선거에서 자민당의 과반 의석을 붕괴시켜 아베 내각을 무너뜨린 뒤 중의원 해산에 따라 열리는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교체한다는 것을 목표로 벌써부터 뛰고 있다.

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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