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자체가 금기 대상="마음속의 말을 하면 범죄가 될 수 있어 말하지 않겠습니다."
"중국의 일부로 남는 것과 독립된 국가 중 어느 게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짱(藏)족 지식인의 답변이다.
"중국 외교부가 자유취재를 허락한 사안이니 걱정 말라"며 답변을 유도했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이처럼 티베트에서는 '독립'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의 대상이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 정부가 듣기 좋아할 말을 한 뒤에도 혹시 무슨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시짱 대학 짱위(藏語)교육과의 한 여학생(19)은 "설령 독립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다시 점령하면 어떻게 하느냐.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서도 기자가 대학 정문을 나설 때까지 기자를 따라붙으며 '내 사진은 카메라에서 지워 달라'고 끊임없이 졸라댔다.
▽마음 놓지 못하는 베이징=중국 정부도 불안,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1951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무력으로 티베트를 점령한 뒤 1959년과 1987년 두 차례 대규모 독립시위가 일어났다. 1959년 3월 봉기 때는 12만 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시위는 유혈사태 끝에 계엄령을 13개월 동안이나 유지해야 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 뒤에도 1993년의 라싸 폭동 등 크고 작은 시위가 빈발했다.
반 중국 정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안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티베트 전역에 걸쳐 중국 어느 지역보다도 오성홍기가 많이 게양돼 있다. 사원이나 대형 건물은 물론 시골의 농목민 집에도 중국 국기가 걸려 있다. 티베트가 중국 땅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강박증'이 엿보인다.
시짱 박물관과 사원 등 어디를 가도 중국과의 오랜 군신관계 및 교류역사를 강조하는 안내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려는 '서남공정'의 결과로 해석된다.
▽당근과 채찍, 양면정책=티베트 지배를 위한 중국 정부의 정책은 '당근과 채찍'으로 요약된다.
대표적인 당근 정책은 경제적 지원이다. 1989년 대규모 독립 시위 이후 중국 정부는 117개의 티베트 개발 프로젝트를 수립해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1년간 800억 위안(약 9조6000억 원)을 지원했다. 이 같은 개발계획 결과 1965년 자치구 출범 당시 3.25억 위안이던 티베트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50억 위안으로 40년 만에 77배 늘었다.
1989년부터는 해외로 망명한 장족의 귀국사업도 추진 중이다. 독립운동 참가 여부와 상관없이 귀국만 하면 집과 직업이 제공된다.
반면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하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도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달라이 라마를 숭배한다는 말만 해도 감시가 뒤따른다.
▽동화(同化)정책이 최고(?)=중국 정부의 강온정책이 그다지 효과적인 것 같지는 않다.
15만 명의 해외 장족 가운데 중국의 귀국정책에 따라 들어온 사람은 전체의 1.3%인 2000여명에 불과하다.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라고 배운 젊은이들 역시 내심으로는 여전히 독립을 갈망하고 있는 것도 중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럽다.
결국 중국 정부는 티베트 지배를 위한 정책으로 인적인 교류·동화정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칭짱철도 개통 역시 티베트에 한족을 많이 들여보내 장족 비율을 낮추며, 나아가 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장족을 한족에 동화시키려는 베이징 측의 계산이 깔려있다.
독립에 대한 장족들의 희망도 갈수록 사그라지고 있다.
시짱 대학 짱위 문학과 자시핑춰(¤西平操·24) 씨는 "(독립 운동을 펼치는) 달라이 라마를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쓸모없는 것(을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셈이다.
라싸=하종대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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