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 AAA’ 도쿄대 국제화 앞장 고미야마 총장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최근 도쿄(東京)대가 일본 최대의 신용평가회사인

R&I로부터 최고에 해당하는 AAA등급을 받았다.

소니 캐논 마쓰시타전기를 비롯한 세계 초일류기업이 즐비한 일본에서도 AAA등급은 도요타자동차 등 3개 기업에 불과하다.

도쿄대가 최고 등급을 받은 데는 일본 고교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며 필요자금의 절반가량을 정부에서 지원받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R&I가 그와 똑같은 비중으로 높이 평가한 점이 바로 2005년 4월 취임한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61) 총장의 걸출한 리더십이다.

고미야마 총장은 2004년 국립대 법인화 조치로 크게 확대된 자율권을 적극 활용해 도쿄대를 세계 최고로 키우기 위해 대학 개혁에 온 힘을 쏟고 있다.

13일 도쿄대 총장실을 찾아 법인화 이후 도쿄대의 변신과 비전을 들어봤다.》

―신용등급평가를 받은 이유는….

“법인화로 대학은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하되 결과를 사회로부터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이번 평가에서 높은 신용등급을 받음으로써 싼 금리의 자금 조달이 가능해졌다. 채권을 발행해 가능한 한 빨리 ‘국제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를 건립한 뒤 외국 출신 연구 인력에게 시가의 반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도쿄는 주거비가 비싸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국제화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올해가 법인화 3년째인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자율이다. 예컨대 종전에는 학생 기숙사 하나도 문부과학성에 신청해서 허가를 받아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성해 기숙사를 지을 수 있다. 대학 발전을 위한 기부금 조성도 자유로워졌다. 즉 도쿄대가 세계 최고의 대학의 되기 위해 속도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법인화 이전에는 국립대는 문부과학성의 일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대에는 이런 시스템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지만 선진국이 된 지금은 대학의 개성이 중요하다. 일본이 국립대를 정부의 보호와 간섭에서 떼어내 자유로운 독립법인으로 만든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한국에는 국립대가 독립법인이 되면 기초교육과 연구가 부실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도쿄대를 예로 들면 그런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의지의 문제다. 우리 학교의 학부 편성을 보면 10개 학부 중 법학부 경제학부 의학부 등 7개가 실용학문 분야이고 문학부 이학부 교양학부 등 3개가 기초학문 분야에 속한다. 1990년대 일본의 대학들이 줄이어 교양학부를 폐지했지만 도쿄대는 계속 유지해 왔다. 현재 우리 대학은 모든 학생이 1, 2학년 때는 교양학부에 적을 두고 문과와 이과에 걸쳐 폭 넓은 교양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학문이 고도화 전문화할수록 기초학문이 중요하다. 도쿄대 실용학부들이 세계 정상급의 연구실적을 낼 수 있는 것은 기초학문의 토대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는 대학생들의 기초학력 부실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기초학력 저하 문제는 세계적인 화제다. 일본은 물론 미국 독일 프랑스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20세기에는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과거에 비해 기초학문의 양이 달라졌다. 우리 대학은 학부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벨상 수상자 등 석학들이 (특정 학문이 전체 학문 틀 속에서 어디에 속해 있는지) 지도를 그리듯 보여 주는 강의를 하고 있다. 기초교육의 틀부터 제대로 만들지 않은 어른들이 문제다. 학생을 탓할 일이 아니다.”

―도쿄대가 목표로 하고 있는 세계 최고 대학이란 어떤 대학인가.

“사회에는 항상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는 부부 둘뿐인 가정이나 인구가 수십억 명인 세계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국제화의 시대이기 때문에 도쿄대는 일본의 지도자가 아닌 세계의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21세기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다. 에너지와 환경 등의 지속성에 답을 내지 않으면 후일이 없는 세기다. 답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가고 싶어 하고 함께 모여 토론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 계획이다.”

―지난해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을 직접 방문해 상설 사무소까지 만들었는데 ‘천하의 도쿄대’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있다.

“지금까지 안 한 게 이상하다. 국제화시대 대학의 진정한 경쟁력은 국제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어떻게 끌어 모으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중국의 우수 학생들이 하버드대 대신에 도쿄대를 선택하길 바란다. 9·11테러를 분기점으로 미국 대학에 진학한 중국 유학생 수는 8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줄었다. 반면 일본 대학에 진학한 중국 유학생 수는 5만 명에서 9만 명으로 늘었다. 현재 일본 이외의 나라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도 사무소를 만들 계획이 있는가.

“그렇다. 학술교류 목적이 우선이지만 우수한 교환학생 유치에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학벌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서울대 폐지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대학을 만드는 것은 좋은 건물이나 다리를 짓는 것과는 다르다. 서울대를 몇 년에 걸쳐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대학을 만들려면 지금까지 걸린 시간이 그대로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연구실 하나를 없앨 때도 그 안에 배어 있는 수십 년의 세월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서 (서울대 폐지와 같은) 그런 실험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도쿄대가 보관해 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최근 서울대에 반환하면서 ‘기증’이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한국 내에서 비판이 많았다.

“외교상 그렇게 된 것이다. 한국 쪽에서는 ‘반환’ 이외에는 대안이 없듯이 일본에서도 ‘기증’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중립적인 용어 선택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엔지니어라서 생산적이지 않은 데 시간을 쏟고 싶지 않다. 순수하게 학문적 의미에서 기증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

―조선왕조실록 외에도 한국의 다른 문화재가 도쿄대에서 발견되면 반환할 생각이 있는가.

“사안에 따라 다르다. 개별적으로 판단하겠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아시아는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지만 선진국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국 일본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술 분야에서는 정치적 갈등과 관계없이 협력 관계가 잘 이뤄져 왔다. 정치도 이처럼 잘 풀리기를 바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 고미야마 총장은 전문가 교수영입등 개혁 이끈 직선총장

고미야마 히로시 총장은 2004년 9월 도쿄대가 법인화된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총장 선거에서 당시 재선이 유력시되던 현직 총장을 큰 표 차로 누르고 선출됐다. 개혁을 열망하는 젊은 교수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 최대 승인이었다.

1967년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강사와 조교수를 거쳐 1988년 교수에 취임했으며 공학부장 도서관장 부총장을 지냈다. 공학부장 때인 2002년에는 정보기술(IT) 분야의 민간전문가를 교수로 공채하는 등 일찍부터 ‘개혁 맨’으로 알려져 왔다.

총장 취임 후에는 세계 최고 대학을 목표로 교육 연구 행정 대외관계 등 전 분야를 망라한 행동계획(액션 플랜)을 마련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공은 화학공학과 환경공학이지만 비전공 분야에도 폭넓은 식견을 쌓아왔다. 특히 어려운 이야기를 알기 쉽게 말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1992년부터 시작한 ‘생존 영어’ 강의는 좌석이 모자라 선 채로 듣는 학생이 많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미식축구 부원으로 활약하던 대학 시절 경기 도중 이가 부러지자 접착제로 붙인 채 게임을 계속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활동적이고 의지가 강하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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