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0년째 집권 중인 푸미폰 국왕은 그동안 17차례의 쿠데타와 15차례의 헌법 개정, 20명의 총리를 겪었으나 정치에 직접 개입한 적은 단 3번뿐. 이번 쿠데타 승인으로 4번째 정치에 개입한 셈이다. 국왕이 쿠데타 세력에 개입한 최근 시점은 1992년. 그 1년 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의 독재회귀 조짐에 국민이 시위에 나섰다. 군 발포로 희생자가 발생하자 국왕은 수친다 끄라쁘라윤 당시 총리와 시위대를 이끈 참롱 스리무앙 당시 방콕시장을 불러 호되게 꾸짖는다. 이 장면은 생방송으로 방영됐고, 총리는 국왕의 종용으로 해외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국왕은 1973년 태국 군부가 민주화운동에 나선 대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8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을 때도 개입했다. 당시 국왕은 왕실을 개방해 대학생들의 피란을 도와주는 동시에 군부정권 핵심인물을 해외로 내보냈다.
국왕은 올해 4월에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사퇴를 이끌었다. 하지만 탁신 전 총리는 해외로 나갔다가 5월에 슬그머니 총리 직에 복귀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쿠데타를 국왕과 총리의 권력투쟁으로 해석한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라고 혹평받는 탁신 전 총리가 평소 국왕을 얕잡아 보는 듯한 언행을 해 신성한 권위에 도전했다고 받아들였다는 것. 불교 원칙에 따라 검소한 삶을 실천해온 국왕이 탁신 전 총리의 축재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점도 이유로 꼽힌다.
태국에서 국왕은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이자 신으로 추앙받는다. 이번 쿠데타군도 탱크 포신과 소총, 군복에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색 리본을 묶었다. 자신들은 ‘국왕의 군대’라는 뜻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망명객’ 탁신 타국 유랑 신세
당장 그의 귀국길은 막혔다. 쿠데타 주역 손티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은 20일 “탁신 전 총리가 재임 기간 저지른 부정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군부는 방콕과 치앙마이에 있는 탁신 전 총리의 저택 2곳을 접수했다.
따라서 그는 망명객 신분으로 타국을 전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부인은 19일 밤 황급히 싱가포르로 도피했다고 알려졌다. 탁신 전 총리는 20일 일단 미국 뉴욕을 떠나 딸이 유학 중인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영국 외교부는 “공식 방문이 아닌 개인적인 방문”이라고 확인했다.
탁신 전 총리가 해외 망명정부를 구성해 재집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가능성은 아주 낮다.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쿠데타를 승인한 상황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것은 결국 그의 자충수이기도 했다. 올 초 엄청난 지분 매각 이득을 챙기고도 소득세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그는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속되는 정치 도박이 실패하자 “사임하겠다”며 해외에 나갔다가 50여 일 뒤 어물쩍 총리 직에 복귀하는 술수를 부리기도 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내달초 임시헌법 초안 마련-새총리 임명”
쿠데타 지도자인 손티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은 20일 거사 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 달 초까지 임시헌법 초안을 마련하고 새 의회가 구성되면 새 총리도 임명될 것”이라며 “2주 안에 임시총리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10월쯤 다음 총선이 치러질 것이라며 향후 1년 안에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이날 새벽 쿠데타군은 의회 내각 헌법재판소를 해산하고 ‘민주개혁평의회’를 구성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고 저녁엔 절대적 권위를 가진 푸미폰 국왕에게서 민주개혁평의회 구성을 승인 받았다.
▽준비 치밀, 전격 거행=손티 사령관은 “갈등 치유와 국민 화합을 위해 쿠데타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태국에서는 1월 탁신 전 총리 일가의 부패 의혹이 제기된 뒤 대규모 항의 시위와 야당의 총선 거부 등 정국 혼란이 계속돼 왔다.
쿠데타에는 육해공 3군과 경찰이 모두 가담했고 탁신 전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출국한 틈을 타 전격 단행됐다. 탁신 전 총리가 미국 뉴욕에서 손티 사령관을 해임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때는 늦었다. 쿠데타군이 방송국을 점령해 탁신 전 총리의 조치는 국민에게 전달되지도 못했다.
쿠데타 지도부는 거사 직후 푸미폰 국왕을 알현한 뒤 바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쿠데타군의 속전속결식 국정 장악으로 탁신 전 총리 측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했다. 탁신 전 총리 가족과 일부 측근은 서둘러 국외로 도피했다.
이 때문에 손티 사령관과 국왕 간의 사전 교감 가능성까지 제기됐을 정도다. 그러나 손티 사령관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 약 2주 전부터 추진했다”며 이를 부인했다.
지도부는 4개 군관구 사령관들에게 해당 지역의 행정을 장악하도록 했다. 탁신 전 총리의 주요 지지 계층인 지방 농민들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외신들은 임시공휴일인 20일 수도 방콕은 평소처럼 평온하지만 집회 금지와 언론 검열로 긴장돼 있다고 전했다.
한편 2만여 명의 한국 교민 사회는 관광업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지만 별다른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주태국 한국대사관 이문국 영사는 “교민들이 불안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LG전자 등 150여 개의 태국 진출 업체 중 일부는 화물 통관이 중단돼 물류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
|
■ 새 실권자 손티, 이슬람교도로 軍최고직… 국왕 신임 두터워
손티 사령관은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소수계인 이슬람교도로는 처음으로 군부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 1969년 사관학교 졸업 후 줄곧 야전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푸미폰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군부 내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탁신 전 총리와는 사이가 나빴다. 전 인구의 4%인 이슬람교도들의 주 거주지역인 태국 남부지방의 소요 사태를 놓고 손티 사령관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탁신 전 총리는 강경 진압을 각각 앞세웠다. 결국 2004년 1월 이후 14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탁신 전 총리 암살 음모가 사전에 드러나 고위 장교 5명이 체포되자 손티 사령관이 배후에 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손티 사령관은 탁신 전 총리의 부패 스캔들로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이 나라의 문제가 국왕 폐하를 슬프게 하고 있어 폐하의 군인으로서 걱정을 덜도록 도와주고 싶다”며 쿠데타를 암시하기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