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베시대 개막]‘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깃발 올렸다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어니그머(enigma).’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이렇게 부제를 달았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란 뜻이다.

평화헌법 개정과 교육개혁 등의 기치를 내건 보수색 강한 ‘아베 일본호(號)’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전후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젊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그가 이끌 일본호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국내외에서는 경계와 기대가 엇갈리는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강한 일본’, ‘보통국가 일본’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아베 총재는 그간 역사 인식 등에서 보수 우익과 궤를 같이하는 발언을 많이 해 왔다.

여기에는 아베 총재가 전쟁에 대한 부채 의식에서 자유로운 전후 세대라는 점에다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영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시 전 총리는 태평양전쟁의 최일선 활약으로 패전 뒤 A급 전범으로 단죄받았으나 석방된 뒤 총리까지 오른 인물.

아베 총재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싸우는 정치가’를 자신의 상표로 내세웠다. 정권 구상에서도 5년 이내 개헌을 목표로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개헌과 함께 그가 힘을 쏟는 것이 ‘교육헌법’이라 불리는 교육기본법 개정. 애국심 함양을 강조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내셔널리즘을 부추길 수 있다며 야당 측의 강한 반발을 샀던 법안이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 등 역사 인식에서 주변국과의 마찰도 예상된다. 정책 구상 중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인도 호주와 함께 전략협의체를 만들어 중국을 포위한다는 구상에서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관점마저 내비친다.

대북 강경카드로 인기를 획득한 그답게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시작해 앞으로 취할 대북 강경 자세의 신호탄을 이미 쏘아 올렸다.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다른 한편으로 아베 총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정상 간 대화 부재’ 상태가 지속되는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태세다. ‘아시아 외교 실패’라는 고이즈미 정권의 오점을 이어가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

이를 위한 한국 및 중국과의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도쿄(東京) 외교가에서는 아베 총재 측이 11월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이라도 ‘만나만 준다면 깜짝 방한 또는 방중을 하겠다’고 제안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그러나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을 전망. 아베 총재가 정상회담을 촉구하면서도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지를 약속하지도, A급 전범 분사 등의 대안 조치도 실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

아베 총재는 야스쿠니 문제를 놓고는 “갔는지 안 갔는지, 갈 건지 안 갈 건지 말하지 않겠다”는 ‘애매모호 전술’로 일관하고 있다.

어찌됐건 올해 4월의 비밀참배로 아베 총재는 적어도 내년 하반기까지 시간을 벌어 놓은 셈. 일본 외무성이 한국 및 중국 측에 “적어도 내년 여름까지는 참배를 하지 않을 것이니 정상회담을 하자”고 주장하는 근거다.

▽귀공자 정권=아베 총재 인기의 시작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이었다. 납치 피해자모임의 요코타 시게루(橫田玆) 씨는 “다른 정치가와 달리 우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우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베 총재 측이 그들의 덕을 입었다. 그는 납치 피해자 문제에서 단호하게 대응해 일약 차기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정치명문가 출신이라는 점도 그를 반석에 올리는 데 한몫했다. 특히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은 총리 자리를 눈앞에 두고 1991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 일본인들의 마음에 부채감을 남겼다.

아베 총재와 내년 참의원 선거를 놓고 일전을 불사할 수밖에 없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조차 최근 “세 후보 중 신타로 씨의 아들이 (자민당 총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당대인들의 아쉬움은 컸던 듯하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의원은 “인기가 높으니 당내 지지도와 주목도가 높아지고, 그러다 보니 다시 인기가 올라가는 ‘상승작용’이 일어났다”고 평했다. 이런 아베 총재의 역량에 대한 평가는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내려지게 된다. 민주당은 이 선거에서 자민당의 과반 의석을 붕괴시켜 아베 내각을 무너뜨린 뒤 중의원 해산에 따라 열리는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벌써부터 뛰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내각-당직 인사 전망

아소 외상 유임-나카가와 간사장 유력

아베 신조 신임 자민당 총재의 ‘내각 인선’에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베 총재는 25일 자민당 주요 당직 인사를 단행하고 26일 총리에 취임하는 대로 내각구성을 발표할 예정. 아베 총재는 “주변의 의견을 충분히 듣되 최종 결정은 혼자서 내릴 것”이라며 자신의 색깔이 담긴 인사를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흘러나오는 원칙은 총리가 젊은 만큼 자민당과 내각 요직에는 노년층을 기용해 ‘노-장-청’의 밸런스를 맞추겠다는 것.

우선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은 유임이 유력하다. 아소 외상이 총재선거에서 2위를 차지했고 예상보다 많은 세 자릿수 득표를 했기 때문이다. 당초엔 ‘두 자릿수’ 득표를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

자민당의 2인자인 간사장은 내년 참의원 선거를 진두지휘하게 될 중요한 자리라는 점에서 아베 총재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인사를 기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같은 모리(森)파 소속으로 아베 총재의 ‘과외교사’이기도 했던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정조회장이다.

아베 총재는 총재선거 과정에서부터 과거 자민당의 관행이던 ‘총-간 분리(총재와 간사장을 다른 파벌에서 낸다)’ 원칙을 무시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내각의 2인자인 관방장관으로는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경제재정상이 거론된다. 정부의 정책을 매일 2차례 설명하는 중요한 자리여서 각료 경험이 풍부하고 당 정조회장을 지내 조정 능력이 뛰어난 요사노 씨가 적임자로 검토되고 있는 것.

아베 총리 만들기에 앞장서 온 측근 그룹이 ‘탈파벌’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대거 요직에 진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무파벌의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전 국토교통상이나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외무성 부상,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의원 등이 그들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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