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모두 자신과 가족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선거부정 등으로 정치적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입지가 흔들리던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가 하루아침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된 것이 이들에겐 등골 서늘한 ‘경고 사이렌’인 셈이다.
▽흔들흔들 대만 총통=천 총통에 대한 사퇴 압박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15일 타이베이 총통부 주변에서 벌어진 총통 퇴진 시위에는 예상보다 2배 이상 많은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운집했다. 대만 민주화 운동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파였다.
천 총통의 퇴진을 요구하는 붉은색 옷차림의 시위대는 빗속에서 형광봉을 흔들며 오전 4시까지 가두행진과 연좌시위를 벌였다.
퇴진운동을 주도하는 인물은 천 총통의 과거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스밍더(施明德) 전 민진당 수석. 그는 지난달 천 총통에게 “과오를 시인하고 사직하라”는 취지의 장문의 편지를 전달해 그를 압박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대만 최대 국경일인 10월 10일 대대적인 제3차 퇴진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출근길 회사원과 공무원까지 가세한 시위가 정권을 바꾸는 ‘붉은 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천 총통은 부인 우수전(吳淑珍) 씨가 거액의 백화점 상품권 뇌물 수수 의혹에 휩싸인 데다 사위 자오젠밍(趙建銘) 씨는 주식 내부거래 혐의로 8년 형을 구형받는 등 잇단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다.
6월 말에는 대만 헌정사상 최초로 총통 파면안이 상정돼 지도자로서의 권위에 치명상을 입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외교기금 오용과 허위신고 사실까지 적발됐다. 이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사면초가 필리핀 대통령=아로요 대통령에 대한 여론도 심상치 않다. 그는 2004년 대선결과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6월 탄핵안이 제출된 지 1년 만인 올 6월 두 번째 탄핵안이 의회에 올라오는 수모를 겪었다. 두 번째 탄핵 이유에는 헌법 위반과 정치적 살인 용인이 추가됐다.
지난달 탄핵안이 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기각되기는 했지만 “하야는 시간문제”라는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끌어준 ‘피플 파워’에 의해 다시 쫓겨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변호사이자 사업가인 남편과 하원 의원인 아들, 시동생의 뇌물수수와 부정축재 의혹이 줄줄이 튀어나온 것도 치명적인 악재다.
최근 남편 호세 미겔 아로요 변호사가 자신에 대한 부정적 기사를 쓴 42명의 기자와 칼럼니스트를 상대로 소송을 낸 뒤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는 반발만 불러왔다.
2001년 집권 이후 정치인과 법조인, 농민 등 700명 이상이 암살당하는 등 사회혼란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와 부실한 개혁 의지도 도마에 올라 있다.
연초 아로요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군부 쿠데타 기도가 적발되면서 나라 전역에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등 불안한 정치, 사회적 분위기도 달라진 게 없다.
동남아시아 지역 전문가들은 “한때 아시아의 뜨는 지도자로 평가받던 이들의 몰락이 아시아 정치 수준에 대한 실망뿐 아니라 경제분야의 경쟁력 약화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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