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돈 못 받으면서 “빚내서라도 복지확대”하려는 정부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경상수지가 적자를 내도 정부는 과감하게 복지 확대 등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최근 국가 장기 전략인 ‘비전 2030’의 재원(최소 1100조 원)을 조달하려면 국민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이렇게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대비하려면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복지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 현 정부의 나라 살림 철학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스웨덴 총선이 복지보다는 효율을 앞세운 우파연합의 승리로 끝난 뒤 국민 부담을 바탕으로 한 복지모델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정부의 재정 운용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 받을 돈 못 받으며 빚 늘리는 정부

현 정부 들어 국가채무(나랏빚)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03년 165조7000억 원이던 국가채무는 2004년 203조1000억 원, 2005년 248조 원에 이어 올해 말에는 283조 원 안팎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정부 계획대로 내년에 9조 원 정도의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처음으로 3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정부가 걷어야 할 돈(국가채권)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후세의 부담이 되는 적자국채 등 빚을 내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가 20일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채권 총액은 수년째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03년 132조3000억 원이던 국가채권은 2004년 130조1000억 원으로 약간 줄었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132조2000억 원으로 늘었다. 올해 말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당연도에 거둬들이기로 한 국가채권 중 미회수액은 계속 늘고 있다. 이 금액은 2003년 6조4200억 원에서 2004년 7조8500억 원, 지난해에는 8조68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회수 국가채권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가 벌금, 과태료 등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건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 복지는 상수(常數)

하지만 재경부 등은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서는 한국의 재정 상황이 건전하다”며 복지를 축(軸)으로 재정 규모를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선 정부는 비전 2030을 추진해 전체 재정에서 복지부문의 비중을 2005년 25%에서 2030년에는 40%까지 끌어올릴 계획. 반면 성장에 필요한 경제 재정 비중은 같은 기간 20%에서 10%로 낮출 방침이다.

복지 부문 강화로 상대적으로 줄어든 경제 관련 재정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일부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국가재정법을 통해 추경 편성 요건을 전쟁 자연재해 경기침체 발생 시 등으로 국한했지만 최근 수년간 추경은 대부분 이런 요건을 벗어나지 않은 만큼 향후 추경 편성이 전보다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은 거의 없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도 19일 “내년에는 거시경제 운용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미세조정’이 아니라 ‘재조정’을 해 나갈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내년에도 정부가 추경 등을 통해 재정 지출을 더 늘릴 수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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