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망명객의 피난처

  • 입력 2006년 9월 21일 17시 26분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20일 런던에 도착하면서 세계 언론의 시선이 쏠리자 영국 정부는 즉각 "그의 영국행에는 아무런 정치적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탁신 총리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받아들인 게 아니라는 것. 영국 외무부는 "그는 딸이 머무는 런던에 개인 자격으로 온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총리가 '망명지'로 영국을 택한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망명객들의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20일 AP통신에 따르면 현재 살고 있는 망명객으로는 콘스탄틴 전 그리스 국왕,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를 들 수 있다. 콘스탄틴 전 국왕은 독재정치를 일삼다 1967년 쿠데타로 권좌에서 쫓겨난 뒤로 영국에서 살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부패 혐의로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파키스탄을 탈출해 런던과 아랍 에미리트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불명예스러운 망명객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영국은 자국의 독립,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망명객들의 해외 베이스캠프이기도 했다.

세계 2차 대전 때 폴란드의 레지스탕스는 런던에 본부를 뒀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장군도 런던에서 활동하며 라디오 방송을 활용해 나치에 대한 투쟁을 부추겼다.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이라크 반체제 인사들의 주요 생활 터전도 영국이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과도정부를 이끌었던 아야드 알라위, 런던에서 반(反) 후세인 캠페인을 펼쳤던 아흐메드 찰라비가 대표적이다.

영국이 이처럼 망명객의 피난처로 각광받는 것은 우선 영어 때문이다. 어느 나라 출신이건 상류층은 대부분 영어를 하기 때문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다. 런던은 또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도시여서 눈에 띄지 않고 살기에 좋다.

망명객에 관대한 영국이지만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망명 희망자의 재산, 체류 계획, 안전 등을 조목조목 따진다.

망명을 거절당한 지도자들 중에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당시 조지 5세 영국왕은 니콜라이 2세를 받아들이면 왕실에 대한 반감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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