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 “한국정부 1년넘게 뒷짐… 기다리다 지쳤다”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참을 만큼 참았다.’

주한 미 공군의 공대지(空對地) 사격장 문제가 30일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게리 트렉슬러 미 7공군사령관의 발언 속에는 이젠 더는 한국 정부를 믿고 기다릴 수 없다는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지난해부터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등이 잇달아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지만 해결 기미가 없자 미 7공군의 책임자가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군 안팎에선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시기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과 함께 미 공군의 사격장 문제가 한미동맹의 갈등을 심화시킬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정부의 어정쩡하고 미온적인 대처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8월 경기 화성시의 매향리사격장이 폐쇄된 뒤 주한 미 공군은 1년 넘게 훈련 일정에 적잖은 차질을 빚어 왔다. 미 공군이 한국 공군과 함께 사용하기로 한 전북 군산시 직도사격장의 자동채점장비(WISS) 설치 공사가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었다. 미 공군 조종사들은 WISS가 설치된 사격장에서 사격해야 훈련 결과를 인정받는다. 이를 위해 직도사격장에는 채점용 카메라 4대와 안전감시용 카메라 1대 등 5대의 카메라가 장착된 40m 높이의 철탑 2개와 25m 높이의 송전탑 1개를 각각 설치해야 한다.

매향리사격장이 폐쇄되기 1년 전인 2004년 6월 한미 양국은 직도사격장에 WISS 장비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지만, 현지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직도사격장 실무협의를 맡고 있는 공군도 직도사격장의 공사 허가권을 가진 군산시의 반대와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문제 이후 군이 나서지 말라고 해 사태 해결에 적극 개입하지 못했다.

사격장 문제가 장기화되자 미 공군 조종사들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조종사들은 직도사격장의 훈련시간이 전체 사용량의 20%에 불과하고 WISS가 없는 직도사격장의 훈련 결과를 본국에서 인정하지 않아 진급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해외 전출을 요구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또 ‘탱크 킬러’로 불리는 A-10 저고도 공격기들의 경우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태국까지 해외 원정훈련을 다녀오기도 했다.

주한미군의 거듭된 사태 해결 요청에 국방부는 2월 직도사격장에 WISS 설치를 위한 산지전용 허가 신청서를 군산시에 냈지만 허가가 불투명해지자 3월 자진 철회했다.

한국 정부의 소극적 대처에 참다못한 미군 수뇌부는 주한 미 공군 전력의 해외 이동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국방부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달까지 직도사격장의 WISS 설치공사를 끝내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는 직도사격장을 사용하는 대가로 3000억 원 규모의 지역발전기금을 군산시에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군산시도 주민 여론 수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말 군산지역 43개 시민단체는 대책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반대 활동에 들어가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군 관계자는 “WISS를 설치하면 실탄 사격 대신 연습탄을 이용한 사격이 늘어나 피해와 위험이 줄고 어로제한구역도 축소된다는 점을 주민들에게 집중 홍보해 다음 달까지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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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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