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혁명땐 표심 쏠렸다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민주혁명은 달랐다.

독립국가연합(CSI)에 민주주의가 확산되면서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그루지야,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혁명이 이어졌다. 이들 국가에서는 양분화보다는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국가 모두 부정선거로 시민혁명이 촉발됐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배경은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국민이 넌더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2005년 3월 키르기스스탄에서 일어난 ‘레몬혁명’으로 한때 개혁의 기수로 불렸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났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창했지만 다른 독재자들처럼 그도 권력욕에 사로잡혔다.

총선에서 영구집권을 위해 선거 부정을 자행하자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시민 무혈혁명을 주도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88.9%의 지지를 얻어 제2대 대통령에 올랐다.

그루지야에서는 2003년 1월 3주간 벌어진 반정부 시위 끝에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사임하고 미하일 사카시빌리가 96%의 지지를 얻어 새 대통령으로 뽑혔다. 당시 시민들이 장미꽃을 들고 시위를 벌여 ‘장미혁명’으로 불린다.

2004년 12월 우크라이나에서는 부정으로 얼룩진 대선결과를 뒤집는 ‘오렌지혁명’이 성공했다. 2004년 동쪽(친 러시아)을 대표하는 여당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와 서쪽(친 서방)을 대표하는 야당의 빅토르 유셴코 후보는 접전을 벌이며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당시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은 10년 집권 동안 실정을 거듭해 민심이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

대통령 선거 결과 박빙의 승부로 재집권에 성공한 여당이 부정선거를 치렀다는 증거가 포착되면서 서쪽을 중심으로 오렌지혁명이 시작됐다. 결국 헌법까지 개정해 유례없는 재선거를 치르도록 대법원의 판결을 얻어냈다. 재선거 결과 8% 차로 야당의 유셴코 후보가 승리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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