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둔 美양당 “당신때문에 9·11 터졌어”

  • 입력 2006년 9월 26일 03시 08분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9·11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최근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유약한 대처 방식이 테러 예방에 실패했다”는 민주당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클린턴의 정면대응=클린턴 전 대통령은 24일 ‘공화당 지지방송사’로 통하는 폭스뉴스에 15분간 출연했다. 그가 퇴임 후 폭스뉴스 방송국에 직접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클린턴 책임론’이 보수적 유권자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퇴치 운동을 묻던 진행자가 슬쩍 “빈라덴 처리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화제를 돌렸다. 진행자는 빈라덴이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3년 소말리아에서 미군이 슬그머니 철군한 것을 보고 미국의 약점을 봤다”고 한 말까지 들먹였다.

평소 모든 TV 토론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지만, 이날만큼은 작심한 듯 분노를 털어냈다.

“나야말로 빈라덴 사살 명령을 내린 사람이다. 은신처인 아프가니스탄 공격 지시도 내렸다. 그러나 정작 중앙정보국(CIA)이 ‘테러의 주범이 빈라덴’이라는 최종 판단을 미루는 바람에 무산됐다. 난 노력했지만, 결과가 안 좋았을 뿐이다.”

30년 경력의 방송 진행자인 크리스 월러스 씨는 진땀을 흘렸다. 그는 “당신은 지금 폭스방송의 사주를 받아…보수파를 대신해 나를 공격하고…얄미운 그 웃음은 뭐냐. 당신이 대단히 똑똑한 줄 아느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질책까지 들어야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1월) 취임 후 8개월을 허송하다 테러를 당했다”고 역공을 펼쳤다.

▽공화당의 공격=미국은 9·11테러 1개월 전에 비행기 납치 모의를 한 자카리아스 무사위를 체포했다. 그의 노트북 컴퓨터에는 ‘공중납치 테러계획’이 담겨 있었지만, 수사당국은 컴퓨터 압수영장을 청구조차 하지 않았다. “특정 혐의가 안 보이면 (테러 용의자일지라도) 영장을 청구할 수 없다”는 이유가 제시됐다.

‘악의 축’ 용어를 만든 데이비드 프럼 전 백악관 공보비서는 ‘악의 종식’이란 책에서 “인권을 너무 소중히 한 클린턴 행정부 8년간 수사기관이 외국인 테러범 인권보호기관으로 전락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의 민주당 책임론은 이런 논리의 연장선이다.

클린턴 책임론은 공화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기류다. 지난 1년간 민주당은 선거압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9·11테러 5주년을 맞아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로 올라서면서 민주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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