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日에 부담줄 결의안’ 美의회 통과될까

  • 입력 2006년 10월 3일 03시 00분


미국 하원의 다이앤 잡슨(72·민주당) 의원은 작심한 듯 ‘정신대 결의안’의 신속처리를 주문했다. 지난달 27일 워싱턴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열린 한미동맹 청문회 자리였다.

“빨리 처리하자. 우리 상임위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결의안이 전체회의에 상정도 안 됐다. 상임위원장과 민주당 간사에게 촉구하겠다. 우리가 못하면 일본의 로비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헨리 하이드 위원장은 잡슨 의원이 이 말을 하는 순간 “질의 시간(5분)을 넘겼다”며 발언을 잘랐다. 하이드 위원장은 이 결의안의 상임위 통과를 주도했던 인물. 잡슨 의원은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I knew it)”라며 웃었고, 방청석에서도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잡슨 의원은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이 지역구인 흑인 여성 정치인이다. 한인 유권자 수만 명이 거주하는 곳인 만큼 그가 한국인의 문제에 관심이 높은 건 당연하다.

그렇더라도 하원의원이 공개적으로 ‘제3국 로비의 성공’을 운운한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의 로비가 그만큼 공공연한 일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의안의 현주소는 이렇다. 2000년 이후 두 번이나 결의안이 제출됐지만 상임위 논의조차 거치지 못한 채 휴지조각이 됐다. 세 번째인 이번 결의안은 좀 달랐다. 상임위 만장일치 통과라는 ‘의외의 성과’를 올렸다. 물론 전체 회의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고, 그나마 올해 안에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일본의 벽은 높다. 일본은 정치인을 움직이는 ‘표’(일본계 유권자)는 적지만, ‘돈’(자금지원)이 풍부하다. 일본 정부는 워싱턴의 대형 로비회사 5, 6곳과 계약을 맺고 있으며, 미국에 진출한 일본기업의 현지 공장 10여 곳은 그곳을 지역구로 둔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의 마음을 붙들고 있다.

잡슨 의원의 발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는 뭘 알았다고 한 것일까.

“미국에 영향력도 훨씬 크고, 국가관계도 한국보다 더 가까운 일본에 부담을 줄 결의안이 어찌 전체 회의를 통과하겠습니까. 위원장이 발언을 제지한 것도 ‘그쯤하면 됐다’는 뜻이고…. 잡슨 의원도 이런 사정을 잘 아니까 웃었지 않았겠습니까.”

미국 의회 사정에 밝은 사람들이 씁쓰레한 표정으로 털어놓은 답변이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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