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성거리는 ‘천국’…스웨덴 ‘복지病 현장’을 가다

  • 입력 2006년 10월 3일 03시 00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중심의 금융가. 새로 집권한 우파 정권이 ‘친기업적 시장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스톡홀름=금동근  특파원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중심의 금융가. 새로 집권한 우파 정권이 ‘친기업적 시장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스톡홀름=금동근 특파원
《열흘가량이 이미 흐른 탓일까. 지난달 28일 찾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엔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9·17총선의 열기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찢어진 선거 벽보 한 장 눈에 띄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6일)이 8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오랜 좌파의 아성이 무너진 현장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첫인상뿐이었다.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선거 얘기를 꺼내면 모두 나름대로 장황한 해설과 전망을 늘어놓았다.》

아이 셋을 키우는 택시운전사 토마스 린델(43) 씨는 “당장 의료비, 교육비가 올라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동생을 둔 회사원 안데르스 린(30) 씨는 “우파 정부가 공약한 대로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사람들을 하나 둘 더 만날수록 누구나 ‘앞으로 작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불안과 희망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스웨덴은 ‘오랫동안 구축돼 온 복지제도로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나라’였다. 그런데 그런 혜택을 받던 유권자들이 우파의 손을 들어 주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높은 실업률’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20%를 웃도는 청년 실업률이 큰 문제였다. 린 씨는 “전통적으로 대학생들은 좌파 성향인데 이번에는 동생 친구들이 상당수 우파에 투표를 했다”고 전했다.

실업률만이 문제라면 해결방법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의 이면에는 ‘고부담’을 특징으로 하는 스웨덴식 복지제도의 문제점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운영하는 라르스 뵈르글뢰프(42) 사장은 “일손이 부족해도 사람을 추가로 뽑는 데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임금에 따라 세율이 달라지긴 하지만 대략 임금의 30% 이상을 고용주 세금으로 내야 한다. 한번 고용하면 쉽게 해고하기 어려운 노동법도 고용을 꺼리는 한 원인이다.

스웨덴 복지제도의 허점은 그 밖에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현장이 병원이다. 스웨덴 병원은 90% 이상이 국영이다. 간단한 감기 치료부터 암 수술까지 모든 치료가 공짜다. 하지만 한번 치료를 받으려면 최소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과연 이런 공짜 병원을 선택할 것인가.

무역업을 하는 이민 2세 송규진(45) 씨는 “수술 날짜 기다리다 죽는 사람이 생겼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송 씨는 그래서 사설 의료보험에 가입했다.

에릭슨에서 35년간 근무하다 최근 퇴직한 레나트 칼손(62) 씨는 일찌감치 개인연금에 가입했다. 정부의 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선 직업이 없고 매일 아픈 사람이 가장 잘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더 나아가 “스웨덴 사람은 무일푼으로 태어나서 세금만 내다 죽는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돈다고 칼손 씨는 귀띔했다.

스톡홀름=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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