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노벨상 '0순위'로 지목된 그의 작품들은 현재 한국을 포함 32개국 언어로 번역돼 문학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날 수상 배경에 대해 "고향에서의 감성적 영혼(melancholic soul)에 대한 탐구 작업은 문명 충돌과 교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찾아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파묵은 '터키의 정체성'을 모멸했다는 이유로 올해 1월 법정에 서서 서방세계로부터 언론자유 탄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등 터키 정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파묵은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터키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아르메니아 학살사건과 쿠르드족 게릴라 투쟁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3만 명의 쿠르드족과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살해됐다"면서 "나 말고는 아무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묵과 터키 정부의 갈등은 유럽연합(EU)이 파묵의 재판에 대해 언론자유 탄압이라고 비난하는 바람에 또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파묵은 1952년 6월7일 이스탄불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묵의 집안은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 숙부 모두 건축을 전공한 엔지니어 가족이다.
파묵은 어릴 적 화가를 꿈꾸었고 명문고교인 로버트대학을 졸업한 뒤 이스탄불대학에서 건축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하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1974년 대학을 자퇴한 뒤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전통적인 오토만 가정환경에서 서구 지향적으로 바뀐 인생궤적을 그린 첫 소설 '제브뎃씨와 아들들'(1982)로 터키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관심을 끌었다.
파묵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생활을 했고 잠시 동안 아이오와대학에도 머물렀다.
파묵은 두 번째 소설인 '고요한 집'(1983)으로 또다시 주목을 받은 데 이어 1985년 발표된 세 번째 소설 '하얀 성'으로 "동양의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뉴욕 타임스)는 격찬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문학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흑서(1990)와 '새로운 인생'(1994), '내이름은 빨강'(1998), '눈'(2002),'이스탄불'(2005) 등 문제작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오르한 신드롬을 일으켰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