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 총살된 현장엔 건설공사 굉음…“집값 얼마나 하려나”

  • 입력 2006년 10월 17일 03시 00분


‘피의 교회’ 뒤에 분주한 크레인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시내에 있는 ‘마지막 황제를 위한 교회’의 십자가 너머로 육중한 크레인이 움직이고 있다. ‘피의 교회’로도 불리는 이곳에는 독실한 슬라브정교 신자들 외에는 찾는 이가 별로 없다. 예카테린부르크=정위용 특파원
‘피의 교회’ 뒤에 분주한 크레인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시내에 있는 ‘마지막 황제를 위한 교회’의 십자가 너머로 육중한 크레인이 움직이고 있다. ‘피의 교회’로도 불리는 이곳에는 독실한 슬라브정교 신자들 외에는 찾는 이가 별로 없다. 예카테린부르크=정위용 특파원
시베리아 횡단열차(TSR). 사진자료 동아일보
시베리아 횡단열차(TSR). 사진자료 동아일보
스탈린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람들이 매장된 곳에 세워진 추모비. 사진자료 동아일보
스탈린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람들이 매장된 곳에 세워진 추모비. 사진자료 동아일보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시내에서 있는 ‘마지막 황제를 위한 교회’ 맞은편에 세워질 고층건물 건설현장 모습. 사진자료 동아일보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시내에서 있는 ‘마지막 황제를 위한 교회’ 맞은편에 세워질 고층건물 건설현장 모습. 사진자료 동아일보
사진자료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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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동아일보
사진자료 동아일보
《러시아의 10월은 격동의 역사를 상징하는 달. 1917년 10월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졌고 74년 뒤인 1991년 10월에는 자본주의 개혁이 시작됐다. 체제 변혁이 일어난 지 15년이 흘렀지만 러시아인들의 가슴 한구석에는 지금도 사회주의 시절의 기억이 선명하다. 지난달 27∼29일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타고 전체 구간(약 9280km)의 5분의 1 거리인 튜멘∼모스크바 구간을 달렸다. 사흘 동안의 여정에서 러시아인들이 피부로 경험해 온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생생한 실상을 비교할 수 있었다.》

“수확한 감자 절반 썩게 만드는 게 사회주의”-미하일로브나 (54·공장지배인)

○ 튜멘 ― 사회주의체제엔 몸서리

지난달 27일 밤 출발 장소인 튜멘의 기차역에서 츠베토바 미하일로브나(54·여) 씨를 만났다. 15년 전만 해도 국영농장인 콜호스의 관리였던 그는 기차역 앞 도로를 가리켰다.

“당시 힘들게 수확한 감자와 밀은 바로 (보관·운송수단이 부족해) 여기서 절반가량이나 썩었다. 사회주의가 농촌을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로 몰고 갔는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미하일로브나 씨는 지금 유제품 공장의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다.

열차 안에서 만난 안드레이 이바노프(54) 씨는 1991년 트랙터 공장 근로자였다. 그는 “사회주의 당시 소련의 공장은 매일 부품이 모자랐다. 술에 취한 공산당원들에게 선물을 갖다 바쳐야만 일할 수 있는 기생 조직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회주의 붕괴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탈리야 미시나(34·여) 씨는 “1992년 가격 자유화조치 이후 물가가 치솟아 며칠간 굶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먹고살기 위해 살인강도를 저질렀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놀랄 틈이 없었죠.”

러시아가 사회주의를 포기한 1991년 9월. 식료품 상점 앞에는 ‘고기 없음,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표지판이 놓였다. 오전 7시부터 상점 앞에는 시민들의 장사진이 이어졌다. 그 뒤에도 한동안 그랬다. 물건이 떨어지는 오후에는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일도 흔했다.

옛 공산당원으로 튜멘 시에서 보따리장사를 한다는 마리야 판필로브나(62·여) 씨는 “사회주의는 만성적인 물품 품귀 때문에 붕괴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사회주의 시절 구금될 각오를 하고 암시장에서 소금을 사고판 일, 어렵게 구한 모피를 도둑맞지 않으려고 철문을 사 온 얘기도 들려주었다.

“스탈린 학살 추모비 가봐야 아무도 없어요”-관광안내원

○ 예카테린부르크 ― 역사? 중요한건 빵!

튜멘 시에서 226km 떨어진 예카테린부르크. 출근길이던 아나스타시야 지미나(28) 씨에게서 사회주의 당시의 집단 매장지와 마지막 러시아 차르(황제)를 위한 교회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두 곳을 ‘최근 기념물’이라고 표현했다.

집단 매장지는 모스크바트락트라는 고속도로변에 있었다. 매장지 관리인은 “스탈린의 대숙청 당시 집단 학살된 3만 명의 유골이 묻혀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1980년대 도로공사 도중에야 발견됐다. ‘최근 기념물’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드문드문 꽃이 걸려 있는 묘비에는 ‘1937년’ ‘1938년’이라는 연도가 유독 많았다. 매장된 사람들이 숨진 시기가 대부분 같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신원은 1991년 사회주의 붕괴 이후 국가보안위원회(KGB)의 비밀문서가 공개된 뒤 일부만 확인됐다. 가까운 곳에는 무명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도 세워져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매장지를 찾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추모비 건너편에는 ‘부동산 할부금용’ ‘품질 좋은 우랄 스틸’이라는 광고판만 즐비했다. 시내에는 새로 들어선 대형 유통점들이 개점을 서두르고 있었다. “매장지에 가 봐야 재미가 없을 것이다. 시민들은 m²당 1000달러를 넘어선 아파트 값에 훨씬 관심이 많다”는 안내자의 말이 떠올랐다.

시내 카를라 리브네흐타 거리에 있는 ‘마지막 황제를 위한 교회’도 외면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교회는 1918년 사회주의 정권 수립 뒤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일가가 한꺼번에 총살돼 ‘피의 교회’로 불린다. 맞은편에 있는 고층건물 건축용 대형 크레인이 교회를 짓누르는 듯했다.

“자본주의 도입 후 외제차 없어서 못팔아요”-마가데예프 (34·자동차 판매상)

○ 니즈니노브고로드 ― ‘부자의 꿈’ 잡힐듯 말듯

29일 작가 막심 고리키의 고향인 니즈니노브고로드에 이를 즈음 승객들은 ‘자본주의가 러시아에 가져온 천태만상’을 화제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자동차 판매회사에 다니는 불라트 마가데예프(34) 씨는 “대규모 사업가의 출현과 할부금융제도의 발달로 시장이 올해만 30% 신장했다. 한국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외제 승용차는 물량이 없어 못 팔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집에 자가용을 따로 두고 10만 달러가 넘는 스포츠카를 모는’ 철강, 운송, 석유, 무역회사 간부들을 위해 특별 마케팅을 실시한다고 했다.

한 승객은 “주말에 1만 달러짜리 소형 전세기를 타고 우랄 산맥 남쪽으로 낚시하러 떠나는 신흥 부자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틀 전 기자가 들었던 궁핍한 사회주의 시절을 러시아가 언제 거쳤는지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뒤 15년째인 올해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10배 이상 늘었다. 1인당 평균임금도 11배 증가했다. 수출 규모는 1995년 824억 달러에서 지난해 2435억 달러로 3배가량 늘어났다.

4인용 객실에서 만난 밸브제조업체 판매부장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52) 씨는 “월급이 1100달러로 전국 평균보다 높지만 고객 동향을 수시로 점검해야 하니 머리가 아프다”며 “주문에 관계 없이 할당량을 채우고 똑같은 임금을 받던 사회주의가 가끔 그립다”며 웃었다.

자본주의에 따르기 마련인 부의 집중 문제도 새로운 골칫거리다. 열차 승무원인 안나 페트로브나(58) 씨는 “2년 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때 월급이 200달러였다”면서 “남편 수입이 넉넉하다면 승무원 일을 그만두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튜멘·예카테린부르크·니즈니노브고로드=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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