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외국인 ‘세컨드 홈’ 바람에 파리 부동산 들썩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3시 19분


복덕방의 모양새는 서울이나 파리나 다를 바 없다. 사무실 창가에 매물과 전세 정보가 빼곡하게 붙었다. 최근 파리는 세컨드 홈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 사무실은 물론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 외국인 전문 에이전시가 부쩍 늘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복덕방의 모양새는 서울이나 파리나 다를 바 없다. 사무실 창가에 매물과 전세 정보가 빼곡하게 붙었다. 최근 파리는 세컨드 홈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 사무실은 물론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 외국인 전문 에이전시가 부쩍 늘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몇 달 전부터 파리에서 일하기 시작한 캐나다인 니콜 코모(42) 씨는 파리 6구 생제르맹데프레 인근에 집을 얻었다. 월세는 약 2000유로(약 240만 원). 작은 침실 하나와 좁은 부엌, 욕실과 화장실, 거실 등을 합해 50m²(약 15평) 규모라는 점을 고려할 때 무척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그는 집을 고를 때 생제르맹데프레를 고집했다.

이곳에는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가 인생과 철학을 논했다는 ‘카페 레 두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가 있다. 이브생로랑 루이뷔통 등 고급 브랜드의 매장이 들어선 쇼핑 거리가 있으며, 뤽상부르 공원과 젊은이들의 활력이 넘치는 소르본대도 가깝다.

코모 씨는 이곳에 집을 구한 이유에 대해 “가장 파리다운 곳에서 이방인이 아닌 파리지앵으로 살아 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거주하는 집 근처에서 자신 소유의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부동산 정보를 부지런히 챙기고 있다.

“뉴욕에 사는 남편이 자기도 파리, 런던 출장이 잦으니 아예 이곳에 집을 사는 것을 고려해 보자고 했어요. 파리에 ‘세컨드 홈’이 있다는 게 로맨틱하기도 하잖아요.”

생제르맹데프레 지역 주택의 m²당 평균 시세는 9500유로(약 1150만 원). 이 지역에서 66m²(약 20평)쯤 되는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62만7000유로(약 7억5800만 원)가 필요하다. 생제르맹데프레의 평당 주택 가격은 파리에서 가장 비싸다.

두 번째로 비싼 곳은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 섬 쪽이다.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아파트의 m²당 평균 가격은 9204유로(약 1103만 원).

파리는 최근 부동산으로 술렁이고 있다. 언론들은 부동산 특집 기사를 앞 다퉈 쏟아낸다. 이사가 많은 계절이어서인지 주택가 곳곳에서 이삿짐을 나르거나 새집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풍경도 자주 보인다. 미용실, 빵집만큼이나 흔한 부동산 사무실에는 팔기 위해 내놓은 집의 사진이 빼곡히 내걸렸다.

부동산 붐을 반영하듯 평균 시세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5% 상승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파리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는 이유 중 하나로 외국인이 이곳에 ‘세컨드 홈’을 구입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파리 시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파리 부동산 거래의 약 8%를 외국인이 차지했다. 샹젤리제와 노트르담 성당 인근 지역만 따지면 각각 매물의 25.5%와 34.5%를 외국인이 사들였다.

프랑스 전체로 치면 작년 한 해 외국인이 구입한 주택의 총 가격은 60억 유로(약 7조2000억 원). 1994년부터 2000년 사이 연간 평균 외국인 주택 구입가격 20억 유로(약 2조4000억 원)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난 수치라고 프랑스 부동산 분석 기관인 ‘퐁시에 엑스페르티즈’는 전했다.

날씨 좋고 인심 좋은 남프랑스에 정착하는 영국인들이 여기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유럽 내 저가 항공사들 덕택에 자국과 프랑스를 맘껏 넘나들며 노후를 즐기는 영국인이 많아졌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는 미국인들의 ‘입질’이 많아졌다는 점. 이들은 특히 파리를 집중 공략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유로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파리에 ‘세컨드 홈’을 사려는 미국인이 크게 늘어났다”며 생활환경이 나쁘지 않고 투자 가치가 있는 17구를 추천하기도 했다.

파리의 평균 부동산 가격은 런던, 뉴욕 등 다른 대도시들과 비교해 비싸지 않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파리 부동산의 평균 가격은 뉴욕, 런던 시내 상급 주거 지역의 3분의 1 수준으로 분석된다.

반면 집을 가진 파리지앵들은 지방으로 떠나는 추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집값 상승이 계속되자 지방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려고 마음먹은 은퇴자들이 서둘러 집을 내놓고 있다.

‘심리적인 장벽’도 낮아지고 있다. 외국인에게는 집을 빌려주거나 팔기를 꺼렸던 집 주인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는 최근 크게 늘어난 외국인 전문 부동산 업체들의 노력이기도 하다. ‘파리 리얼에스테이트 파인더스’ ‘마이 플랫 인 파리’ ‘마이 홈 인 파리’ 등의 이름을 달고 영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 전문업체는 부동산 분야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낮추는 데 한몫을 했다.

파리에 집을 산 미국인 몇 명을 만나 보니 이들이 단순히 투자 차원에서 산 것만은 아닌 듯했다. 최근 파리 7구 앵발리드 인근에 30평 규모의 아파트를 장만한 미국인 메리 조 스미스(50) 씨는 이렇게 말했다.

“파리에 집을 사는 것은 내 평생의 꿈이었다. 다른 도시가 아닌 파리에 집을 샀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남다르게 보고 부러워하는 친구가 많다. 파리는 그들에게도 꿈과 빛의 도시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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