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병원 국제부에는 이처럼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문의가 세계 곳곳에서 들어온다. 최근에는 한 한국인 폐암 환자가 임상시험 중에 있는 신약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치료를 신청하기도 했다.
요즘은 새 치료 기술이나 치료약이 미 식품의약국(FDA)과 학계의 공식 승인을 얻으면 단 몇 개월 안에 전 세계 의료진과 병원들이 공유할 수 있다. 이 치료 기술이나 약을 다루는 의사의 기량과 경험이 병원의 ‘실력 차’를 낳지만 한국이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그런데 아직 표준화되지 않은 치료 기술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직 승인받지 못한 새로운 치료 기술이나 약의 시험대상이 되고 싶어 하는 수많은 환자가 존스홉킨스병원 문을 두드린다.
스티브 톰슨 존스홉킨스병원 수석부원장은 “우리 병원은 일선의 의사, 교수, 연구원의 아이디어가 신약이나 치료 기술 개발로 이어져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환자 치료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기간이 가장 짧은 병원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무료로 이뤄지는 신기술이나 신약의 적용 대상이 되기 위해선 매우 좁은 문을 뚫어야 한다. 미국 시민권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외국인이 대상이 되는 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상당히 어렵다.
어쨌든 이처럼 ‘벤치(bench·실험실) 투(to) 베드사이드(bedside·임상 및 치료)’의 순환이 무척 빠른 것은 병원 경영진이 ‘난치병 환자의 마지막 희망이 되자’는 구호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서비스부문 세계 일류 상품의 특성’ 보고서는 “존스홉킨스병원이 세계 일류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환자를 대하는 친절함이나 안락함 같은 서비스의 질보다는 세계 최초 심폐소생술 개발과 같은 창조적 모험적 실천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 병원이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었던 힘도 남들이 망설이는 일을 과감히 시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평범한 성공보다는 오히려 ‘위대한 실패(great failure)’에 점수를 주는 조직 분위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 단기 연수 중인 삼성서울병원 내과 신준암 수석전공의는 “교과서에서는 신장 기증자와 환자의 혈액형이 다르면 거의 이식수술을 못하는 것으로 배웠는데, 이곳에선 강력한 면역억제제 사용과 혈장 교환술을 거쳐 이식수술을 하는 걸 보고 놀랐다”며 “비용이 무척 많이 들긴 하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근 볼티모어 시 근교의 병원 수련원에서 열린 작은 워크숍도 이 병원의 특장을 보여 주는 작은 사례다. 암과 독성물질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진 존스홉킨스병원 의사, 기초과학 연구자는 물론 의료사회학자, 통계학자까지 20여 명이 모여 각자가 진행 중인 연구와 정보를 교환하고, 향후 2년간 공동으로 협력해 나갈 연구 방향에 의견을 모은 것.
존스홉킨스병원을 떠받치는 경쟁력은 이 같은 일선에서의 유기적 협력에서 나온다. 좀 더 큰 차원에선 병원-의과대학-연구소라는 세 축의 긴밀한 협력으로 확대된다. 존스홉킨스대 의대는 미국 내 의대 평가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수위를 다투는 명문이다. 연구시설 및 인력도 방대하다. 병원 단지 지하에는 미국 동부 최대 규모의 동물실험실이 있다. 실험용 쥐가 6만 마리에 이르고 실험동물 전용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실이 여러 개 따로 있다.
이 병원 방문교수인 삼성서울병원 김진용(소화기내과) 교수는 “의사들 간에는 물론이고 임상의사와 기초연구자, 각종 지원 파트 등 각 부문의 협력이 매우 쉽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요즘 제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가 대장암 예방과 음식물의 관계인데 어떤 식물의 특정 성분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으면 곧바로 약학 및 화학과 교수와 상의가 이루어지고, 이들의 도움으로 곧 여러 종류의 화합물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동물 실험과 임상 적용도 빠르게 이뤄지고요. 한국에서라면 수개월 이상 걸릴 뿐 아니라 심지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불과 수주 만에 진행되는 것을 봅니다.” 김 교수의 말이다.
볼티모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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