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희수]또하나의 뇌관 ‘후세인 사형선고’

  • 입력 2006년 11월 7일 03시 00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이라크 사법부에 의해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아직 항소가 남아 있고 재임 중 다른 범죄에 대한 기소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 실제 사형집행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후세인은 분명 독재자였지만 25년간 이라크를 통치한 지도자로서 외국군의 침략에 의해 권력을 잃은 최초의 아랍 지도자였다. 더욱이 후세인은 아랍권 쪽에서 보면 세계 최강국 미국이 군사행동을 통해 체포한 뒤 법정에 세운 인물이다. 그리고 미 점령하의 사법부가 그를 단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이미 예고된 일이긴 하지만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이라크 내부는 물론 중동 전역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첫째,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이번 판결을 통해 다시 한번 천명했다. 개전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에 우호적인 단독 정권 수립이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에서 미국은 종파 간의 적절한 힘의 균형을 통해 이라크를 계속 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항 세력의 버팀목인 후세인의 제거는 미국으로서는 국면 전환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라크전쟁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위해 미 의회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이라크 사법부가 사형선고를 강행한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둘째, 이번 사형선고는 다른 중동 국가 지도자들에게는 심각한 경종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에서는 왕정과 장기 집권으로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물론 후세인 정권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쿠웨이트나 걸프 산유국들은 표면상으로는 후세인 사형선고에 대해 ‘죗값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이 점은 국민의 정치 참여 확대와 자유민주주의 제도 도입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라크는 물론 중동 전역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더욱 확산되고 조직적인 반미 투쟁이 가속될 것이다. 대다수 아랍 대중은 후세인의 독재보다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후세인 시절이 오히려 나았다는 분위기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후세인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밉기 때문에 미국의 사주를 받는 이라크 사법부에 의한 후세인 사형선고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수니파 저항 세력이 더욱 조직적이고 극렬한 대미 투쟁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넷째, 사법제도와 인권 문제, 선거 방식 등 미국식 스탠더드와 강요된 민주주의가 중동 지역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중동 지역 패권을 노리던 후세인의 제거는 인근 아랍 국가 지도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부족주의와 합의 방식의 이슬람식 사고에 익숙한 아랍 대중이 미국의 방식에 대해 느끼는 반발 또한 거세다.

미국은 후세인에 대한 사형선고로 이라크를 얻고 이란을 완전 통제함으로써 중동 지역의 전략적 이익을 완성하겠다는 대중동 구상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만큼 이라크와 이란은 물론 중동 지역 내 반미 세력의 저항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동시에 중동 국가 지도자들은 좋건 싫건 민주화와 개방사회로 향하는 개혁조치들을 하나씩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담 후세인의 사형선고로 중동은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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