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하나는 부패한 워싱턴 정치. 선거 판도를 가를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민심의 분출’이다. 2004년 대통령선거 때는 테러, 신앙, 경제가 비슷한 비중으로 1∼3위를 차지했다.
○ 무능, 독선, 그리고 부패
공화당은 선거기간 내내 민주당의 이라크전쟁 공세에 질질 끌려 다녔다.
한마디로 전쟁준비 능력도 없었고, 부정직했으며, 독선적이었다는 공세였다. 감세정책으로 경제가 살아났다거나 9·11테러 이후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었다.
놀라운 점은 거물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의 스캔들이 유권자의 뇌리에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펜실베이니아, 몬태나, 오하이오 주의 공화당 상원의원은 전멸했다. 12년 전인 1994년 “40년 장기 집권한 민주당의 부패를 청소하겠다”며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으로선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뿐만 아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복구 과정의 실정(失政), 거시경제 지표는 좋지만 나날이 식어가기만 하는 체감 민생경제, 10대 사환소년을 상대로 한 현역 하원의원의 동성애 추문…. 악재는 꼬리를 물었다.
공화당으로선 28석을 잃은 하원에서보다 상원의원 선거 참패가 더 뼈아프다. 현역의원 15명이 재선에 나섰지만 결과는 9승 6패. 임기 6년의 상원의원은 “(낙선보다는) 은퇴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더 높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로 재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참패다. 벌써부터 ‘공화당이 2년 뒤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 부시 어디로 튈까
차기 하원의장이 확실시되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8일 새벽 “미국 유권자의 뜻에 따라 초당적 협력정치를 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12년간 의회 권력을 내줬던 민주당의 분위기를 보면 백악관과 의회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당 전략가인 제임스 카빌 씨는 CNN방송에 출연해 “110대 의회 2년간은 의회가 법정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문회 및 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이라크전쟁 정보 판단 실패, 부패 로비스트 아브라모프 스캔들 조사, 딕 체니 부통령이 경영했던 군수기업 핼리버튼의 폭리 여부에 대한 조사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선 6년간 펴 온 정책의 마무리보다 민주당 주도 의회의 공세적 입법 활동을 방어하는 데 급급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상원도 몬태나 버지니아 주의 재검표에서 민주당 후보 승리가 확정될 경우 민주당 지지 의사를 밝힌 2명의 무소속을 포함해 51 대 49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민주당의 의회 지배는 산술적 의석수보다 훨씬 더 강화될 게 분명하다. 정치분석가 폴 비겔라 씨는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뉴햄프셔 주 등 민주당 아성의 공화당 의원들은 2008년 선거를 생각할 때 ‘부시 대통령 따라가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여소야대 정국이라 해도 부시 대통령의 강한 개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 최근 인기가 바닥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두고 “남은 임기 2년을 함께 간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올해 말을 전후해 결정될 ‘럼즈펠드 유임 문제’가 앞으로 2년간 워싱턴 정국의 흐름을 가늠할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 한반도 정책 바뀌나
민주당의 압승으로 미국의 대북정책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대북정책=6자회담이란 핵심 틀은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북 협상에 나서라는 의회의 압력은 더 강해질 전망이다.
특히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의 입지가 현저히 줄어들고 국무부와 신설된 대북정책조정관에게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으로 가장 유력한 톰 랜토스(13선) 의원은 대북 특사를 통한 핵 문제 담판을 주장해 왔다. 데니스 헬핀 미 하원 국제관계위 전문위원은 본보와의 회견에서 “랜토스 의원은 북한을 직접 다녀온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 가운데 유일한 현역의원인 그는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친해 국무부와의 정책 조율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주도해 지난달 발효된 국방수권법에 따라 신설된 대북정책조정관의 위상도 높아지게 된다. 의회조사국 아시아 전문가인 래리 닉시 박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조정관에 급이 낮은 인물을 임명함으로써 국방수권법을 사실상 피해 가려 할 수도 있지만 의회의 강한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FTA 협상= 한미 간 최대 통상 현안인 FTA 협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현재 미국은 한국과 정부 차원의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쪽에서 볼 때 한국과의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그러나 양국은 지난달 27일 제주에서 열린 한미 FTA 제4차 협상에서도 구체적인 합의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 정부가 FTA에 합의하더라도 미국 의회의 비준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미 FTA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협상 타결 시점. 부시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TPA)’이 내년 7월로 만료된다. TPA는 FTA를 원활히 하기 위해 행정부가 합의한 FTA의 개별 사항을 의회가 수정하지 못하게 하고 비준 여부만 결정하도록 한 조치.
의회가 TPA를 연장해 주지 않으면 정부 차원에서 합의한 FTA라도 의회가 개별 내용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의회 통과가 더욱 어려워진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선거 졌으니 럼즈펠드 내쫓아야” ▼
뉴욕타임스 사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8일 중간선거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퇴임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이번 선거 과정에서 민주, 공화당원 할 것 없이 럼즈펠드 장관의 퇴진에는 의견이 일치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원들은 원래부터 럼즈펠드 장관 교체를 요구해 왔으며 이라크전쟁이 수렁에 빠지면서 선거가 불리해지자 공화당원들까지 교체 요구에 동참했다는 것.
선거 과정에서 일부 후보는 럼즈펠드 장관 축출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는가 하면 일부는 지속적으로 그의 업무 수행에 불만을 제기했고 미군의 이라크 파병을 강력히 지지해 온 층에서도 적어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럼즈펠드 장관이 미군을 경량화·신속화한 21세기형 기동군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해 오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지만 이제는 국방부에 새로운 팀을 구성해 기존 전략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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