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산업디자인상 받는 박상현-김지애씨

  • 입력 2006년 11월 18일 02시 58분


○ 늦깎이 입문… 독일 레드닷 디자인 콘셉트상 수상

적지 않은 젊은이가 ‘이제는 늦었다’며 지레 포기한다.

좀 더 노력해 내가 정말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찾을 걸…. 대학에 다니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하다.

잠시 방황도 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채, 아니면 이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 일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박상현(28) 씨와 김지애(27) 씨는 자신들의 앞에 놓인 인생의 길에서 우뚝 멈춰 섰다. 각각 서울대 기계공학과와 서울대 생물학과를 나온 이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외치는 작은 울림을 들었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다. 돌아서 천천히 간다고 해도 결코 늦지 않다. 네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용기 내서 시작하는 거다.”

이들은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산업 디자인상 중 하나인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는다. 제품디자인, 커뮤니케이션디자인, 디자인콘셉트 등 이 상의 3가지 부문 중 지난해 신설된 디자인콘셉트 부문에서다.

○ 삼성디자인학교의 힘… 열정이 있으면 꿈은 이루어진다

박 씨와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직장 생활을 접고 지난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삼성디자인학교(SADI) 제품디자인학과에 뒤늦게 입학했다.

1995년 삼성물산이 설립해 운영하다 2000년 삼성전자가 운영권을 넘겨받은 이 학교는 고교 졸업자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한 3년 학제의 디자인 교육 기관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공식 학위를 주지 않는 데도 현업 출신 디자이너 교수진과 첨단 시설을 갖춰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와 패션디자인학과로만 운영되다가 지난해 제품디자인학과가 신설됐다. 박 씨와 김 씨는 이 학과의 1기 입학생이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믿음으로 박 씨는 각 대학 디자인학부 교수들에게 e메일을 보내 뒤늦게 디자인을 배울 방법을 문의했다. 이순종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자신의 수업을 청강하라는 제의를 했고,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후 SADI의 문을 두드렸다.

생물학을 전공한 김 씨도 입학 면접을 앞두고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면접장에서 만난 교수들은 “디자인은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미술 실력은 평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차세대 휴대전화를 디자인해 보라는 주문에 액정이 부채 모양으로 펼쳐지는 쉬운 그림을 그렸다. 교수들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사회와 호흡하는 살아 있는 디자인

올해 레드닷 디자인상의 디자인콘셉트 부문은 세계 각국의 84개 팀이 수상한다.

이 가운데 한국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기업 2개사와 SADI 홍익대 단국대 대진대 등 학교 6곳 등 모두 8개 팀이 포함됐다. SADI 소속으로 한팀을 이뤄 이번에 수상하는 박 씨와 김 씨는 기업의 디자인 인력도, 20대 초반의 디자인 전공 대학생도 아니어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들의 출품작은 ‘봉봉 박서’(사진)라는 이름의 어린이 놀이용구다. 충격을 흡수하는 라텍스 폼 재질로 만든 모자와 장갑, 부츠인데 이것을 착용하면 어린이들이 주먹다짐하며 싸우더라도 다치지 않는다.

박영춘 SADI 교수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밖에서 놀지 않는 요즘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놀이문화를 제시한 콘셉트”라면서 “부모가 말리는 아이들 싸움을 역발상을 통해 디자인 소재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장래 계획은 뭘까. 입사 또는 유학이란 답이 나올 거라는 기대에 유쾌하게 허를 찌른다.

“재미있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면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뿌듯할 것 같아요.”(박 씨)

“지금 생각을 말로 표현해 버리면 그 속에 저를 가둘 것 같아요. 제 앞에는 여전히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져 있을 거니까요.”(김 씨)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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