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데이비드 브룩스]고전이 바비를 구했다

  • 입력 2006년 11월 28일 03시 02분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의 영화 ‘바비(Bobby·로버트 케네디의 애칭)’는 새로운 미국인 세대에 로버트 케네디의 순교(피살)를 소개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진정 교훈을 주는 것은 형(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로버트의 반응이다.

1963년 11월 23일 에드거 후버(연방수사국장)가 전화를 걸어 왔을 때 로버트는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후버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고 전했다. 로버트는 손으로 입을 막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몇 개월 동안 그는 비통에 젖어들었다. 전기 작가 에번 토머스 씨는 “그는 문자 그대로 오그라들었다. 황폐하고 수척해져 옷들이 전혀 맞지 않았다. 특히 그가 입기를 고집하던 형의 낡은 외투와 턱시도, 가죽 재킷은 야위어가는 몸에 늘어뜨려져 있었다”고 썼다.

그러던 로버트는 1964년 3월 버니 멜론(백만장자 미술품 수집가인 폴 멜론의 부인)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며 에디스 해밀턴의 ‘그리스인의 삶(The Greek Way)’을 읽었다. 재클린 케네디가 건네 준 책이었다.

로버트는 아테네의 위대한 인물들에 관한 에세이에서 비극을 이겨 낼 세계관을 발견했다. 해밀턴은 “세상이 폭풍에 휩싸여 나쁜 일들이 잇따르면서 다른 어느 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인간이 오랜 세월 쌓아 온 정신의 강건한 요새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썼다.

고전학자들은 흔히 해밀턴이 ‘그리스라면 모든 것은 영광’이라는 식으로 글을 썼다고 비웃지만, 그 책은 로버트의 삶을 바꿔 놓았다. 그는 낡고 밑줄이 쳐진 이 책을 가지고 다녔으며 주머니에서 꺼내 큰 소리로 읽곤 했다.

로버트는 그리스인들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감성, 즉 영웅적이지만 신비적인 뭔가를 발견했다. 비극 작품에 등장하는 그리스인 특유의 불길한 예감, 사건들을 서로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패턴, 어느 순간의 오만함이 결국 어떻게 꼬여 괴로움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그리스인 특유의 자각이 그것이다.

해밀턴은 그리스 희곡을 특징짓는 숙명과 찬양의 이상한 조합을 묘사하는 데 최고였다. 선은 악에서, 미덕은 고난에서, 지혜는 고통에서 태어난다는 확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로버트는 아이스킬로스의 다음 문구를 암기했다.

“신의 법칙은 ‘알려고 하는 자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잠든 동안에도 고통은 한 방울씩 가슴 위에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고통은 신의 은총에 의해 지혜로 다가온다.”

로버트는 형의 죽음을 이겨 내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죽음을 직시하고 용기를 얻어내는 교훈을 발견했다. 그는 해밀턴이 그리스인의 낙관주의적 특성을 요약한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삶의 충만함은 그 위험천만함에 있다. 그것이 바로 최악의 경우라도 패배를 승리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로버트의 이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과거로부터 불굴의 교훈을 얻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윈스턴 처칠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가진 특성을 발전시켰다. 그는 1960년대에 대표적 인물이 됐지만, 1960년대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많은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지만 어떤 팀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곳에서 힘을 얻은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과거로 돌아가 결코 변하지 않는 문제들을 공부하고 그 유산을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건국의 지도자들은 고전에 흠뻑 빠져들었고, 케네디는 위기 속에서 고전을 발견했다. 오늘날 학생들이 우연찮게라도 고전을 접한다면 행운이라 하겠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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