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6월 3일 미국 워싱턴의 미국기업연구소(AEI) 건물내에서'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모임 결성식이 열렸다.
결성선언문 서명자는 폴 월포위츠, 존 볼턴, 루이스 리비, 엘리엇 코언, 로버트 케이건 등등 21세기 초반 지구촌에 '명성'과'악명'을 동시에 날린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의 명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PNAC 결성으로부터 9년 반이 지난 3일 볼턴 유엔주재 대사가 낙마함으로써 "민중을 학살하는 독재자가 사라지고, 시장경제가 만개하며, 질서와 원칙이 지배하는 잘 정돈된 민주주의 세상"을 꿈꾸며 지구촌 개조에 나섰던 네오콘들은 미 행정부의 중심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네오콘의 성쇠= 네오콘의 초기 핵심인물들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뉴욕 등 동부 아이비리그 출신의 엘리트들, 특히 '가난한 학생을 위한 하버드'로 불렸던 뉴욕시티 칼리지 출신이 많았다.
이후 네오콘 2, 3세대들은 "미국의 힘으로 세계의 도덕적 선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경한 우익으로 발전하다 2001년 9·11사태를 계기로 행정부 핵심세력으로 등장했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부장관을 실질적인 정점으로 리처드 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루이스 리비 부통령비서실장 등이 상층부 그룹을 형성했고 국방부 국무부 백악관에 학맥과 인맥으로 얽힌 네오콘들이 수십명 포진했다. 네오콘은 아니지만 강경 보수파인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들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했다.
민간에선 윌리엄 크리스톨 위클리스탠더드 편집인, 로버트 케이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교수 등이 여론화와 논리의 토대를 제공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침공은 네오콘 위세의 정점인 동시에 쇠퇴의 분기점이 됐다. '책상에서 짠 계획대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비웃듯 이라크 상황이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네오콘 내에서부터 분열이 생겼고, 하나둘 요직에서 물러났다.
물론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 엘리어트 에이브럼스 부보좌관,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차관 등이 현직에 남아있지만 이제는 미 행정부내 다양한 이데올로기 분파중 하나로 위세가 줄어들게 됐다.
▽부시 행정부의 남은 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볼턴의 유엔대사 임기연장을 포기한 것은 그의 강경한 네오콘 철학을 거부했다기 보다는 의회와 버거운 싸움을 벌이지 않겠다는 현실적 수지타산의 결과로 풀이된다.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과 새해부터 수많은 협력과 경쟁을 해야 하는 마당에 인준을 놓고 불필요한 힘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부시 대통령은 5일 볼턴 대사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자리에서 "지금 행복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곧이어 폭스TV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볼턴 대사는 사안마다 성과를 이끌어 냈다. 미 상원의 얄팍한 정치 때문에 그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의 '민주당 심기살피기' 인사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6년간 '보수적 판사' 임명을 위해 민주당과 다퉈왔지만, 선거 패배 직후 '동성애자 결혼에 우호적'이라는 평가가 따르는 민주당 성향의 판사를 연방 지방법원 판사로 내정한 바 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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