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11시 반경 이라크 바그다그 시내의 적신월사(Red Crescent) 건물. 종파·민족 구분 없이 인도적 구호활동을 펴는 이 단체의 2층짜리 건물 앞에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트럭 등 차량 10대가 멈췄다. 적신월사 직원들이 “국제적십자사와 협력해 일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괴한들은 “나쁜 조직과 일하고 있다”며 여직원 1명을 제외한 25명의 직원을 차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 갔다.
최근 바그다드 일원에서 빈발하는 이 같은 대규모 민간인 납치는 수렁에 빠진 이라크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준다. ‘미군 대(對) 반군’ ‘수니파 대 시아파’란 구도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누가 누구를 상대로 싸우는지 구분조차 어려울 만큼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양상이다.
이날 적신월사 직원 납치 사건도 이라크 내무부 관리들이 연관돼 있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과 달리 이라크 주둔 미군을 2만∼5만 명 증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라크스터디그룹(ISG)이 2008년 초까지 미군을 대부분 철수하도록 권고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유혈분쟁은 기본적으로 사담 후세인 잔당과 테러리스트들의 준동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전력을 증강해 이들을 제압한 뒤 감군 및 철수를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합참과 백악관 예산실 등을 중심으로 2만 명 이상의 병력을 추가 파병하기 위한 구체적인 병력 동원 및 예산 지원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이 같은 부시 행정부의 기류에 민주당은 표면상 반발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미군 증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17일 “만약 내년 말까지 미군을 철수시킨다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그에 앞서 2, 3개월 일시 증원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난주 “이라크 상황을 통제하고 정치 일정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추가 병력의 투입이 필요하다”며 “5∼10개 여단 규모(1만5000∼3만 명)의 증원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은 이미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조속한 철군만이 대안이라는 여론이 아직은 더 우세하다.
민주당 중진인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17일 “미군 증원은 이라크 정부에 목발을 하나 더 주는 의미 외엔 특별한 게 없다”며 “이라크는 분열돼 있으며 이제 남은 한 가지 문제는 어떻게 하면 미군을 보호해 이들이 악의 소굴로 빠지지 않도록 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이날 CBS방송 인터뷰에서 “지금 미군 병사들은 너무 지쳐 있어 탈이 날 수도 있다”며 “백악관의 증파 계획을 정당화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찾아볼 수 없으며 미군이 바그다드 경찰 대체 병력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에는 현재 약 14만 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