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고 가혹한 계급제도(카스트)로 유명한 인도에서 사상 처음으로 불가촉천민(달리트) 출신의 대법원장이 탄생했다. 그의 고향은 인도 서남부 케랄라 주.
압둘 칼람 대통령은 22일 내년 초 퇴임할 Y K 사바르왈 대법원장 후임에 K G 발라크리슈난 대법관(61)을 지명했다. 발라크리슈난 새 대법원장은 내년 1월14일 취임해 2010년 5월까지 제37대 대법원장직을 수행한다.
달리트는 인도 인구의 16%를 차지하지만 카스트의 4계급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온 계층. 카스트의 최하층인 수드라(노예 천민) 보다도 못해 사람들은 '스치기만 해도 오염된다'며 이들을 불가촉천민(Untouchable)으로 불렀다. 마하트마 간디가 이들을 동정해 하리잔(신의 아들)이라는 이름까지 줬고, 1950년대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원 출입이 금지되고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고 신발도 못 신고 버스나 기차에 타도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일부 지방에서는 밤에만 거리에 나올 수 있었다.
이런 신분의 발라크리슈난 대법관이 케랄라 주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많고 인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지역인 케랄라 주는 달리트 계층에게 관대했다. 달리트 신분이라도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상급학교 진학을 허용했다.
달리트 출신의 첫 대통령인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 전 대통령도 이 지역 출신이었다. 나라야난 대통령은 2000년 동향이면서 신분이 같은 발라크리슈난 판사를 대법관으로 발탁했다.
발라크리슈난 대법관의 부모는 아직도 고향의 달리트 주거 지역에 산다. 아버지는 케랄라 주법원의 말단 직원이었다. 하지만 8명의 자녀들을 교육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둘째였던 발라크리슈난 대법관은 초등학교 때 4학년에서 6학년으로 월반을 할 정도로 수재였다. 집안의 기대가 컸다. 결국 아버지의 소원대로 법대에 진학해 판사가 됐고 케랄라 주 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대법관까지 올랐다.
발라크리슈난 대법관은 복잡한 인도 정국에서 각 정당의 지지를 고루 받을 정도로 균형감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직후 일성으로 '사법부 부정부패 척결'을 약속했다. 그의 고향마을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김기현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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