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달 수단 정부에 최후통첩을 전하면서 1월1일을 데드라인으로 삼았다.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을 수단정부가 계속 반대한다면 '모종의 조치'를 내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 첫날인 1월1일부터 수단 문제로 골머리를 썩어야 할 운명이다.
다르푸르 학살은 인권문제만이 아니다. 수단의 석유자원은 중국이 움켜쥐고 있다. 중국의 '배후 방어막' 역할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깔려 있다.
●종교로 갈리고, 인종으로 찢기고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최근 서방언론 인터뷰에서 "유엔 병력은 수단에 들어와도 '돕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을 통해 미국이 영향력을 키우는 것은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북부 아프리카 이집트의 바로 밑에 위치한 수단은 북부 아랍계와 남부 흑인이 마주하는 나라. 비극의 단층선이 존재하는 나라다. 북부 아랍계가 남부 밀림으로 내려와 흑인을 노예로 팔고, 자원을 수탈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56년 영국에서 독립.
미국이 이 나라에 관심을 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90년대 이슬람 극단주의가 휩쓸면서 알 카에다가 본거지를 수단으로 옮겨와 테러활동을 시작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수단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고, 한때 유전개발을 주도했던 미국과의 경제거래는 중단됐다.
영국 식민지 시절 생겨난 흑인 기독교도에 대한 북부 이슬람의 탄압은 미국 내 기독교인의 신앙심을 자극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 주 미들랜드 기독교도가 기독교박해를 이슈화하면서 백악관은 수단인권특사를 임명하고 적극 개입했다. 결국 2005 남북간 '포괄적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그러나 2003년 시작된 다르푸르 갈등은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었다. 사막화로 아랍계 유목민이 목초지를 잃어가자, 정착 농경을 하던 흑인 이슬람교도의 땅을 넘봤다. 건국 이래 소외당하던 흑인 이슬람교도가 정부 건물을 공격했고, 정부는 아랍계 민병대(잔자위드)를 활용해 '이이제이' 전법을 썼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현재 단 7000명뿐인 아프리카연맹(AU) 병력이 다르푸르에 진주해 있으나, 제 기능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명사들의 외로운 외침
영국으로 빠져나와 올 10월 더 타임스와 인터뷰를 한 민병대원 딜리(가명)는 비극을 생생히 전했다. 그는 "인종청소다. 아랍계를 아프리카에 심는다는 이유로 강간이 자행된다. … 흑인을 안 죽였으면 내가 죽었다. 정부가 민병대원의 가족에게 돈을 대고 있다"고 폭로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러스 크리스토프 역시 다르푸르 문제의 해결을 단골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는 수단과 유엔을 오가며 대중 집회를 열고, 기자출신 아버지와 함께 CNN에 출연해 "어떻게 이토록 불필요한 죽음을 모른 척할 수 있느냐"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수 엘튼 존, 영화 '호텔 르완다'의 주인공 돈 치들 역시 함께 뛰는 연예인이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지만 미국 대중의 기억에서 수단의 비극은 희미할 뿐이다.
●중국의 장악-미국의 눈독
미국이 경제제재로 손을 떼면서 수단은 중국의 에너지 공급처가 됐다. 2003년 미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수단 석유자원의 40%를 손에 쥐고 있다. 중국의 연간 수단산 석유수입액은 2000년 7.2억 달러에서 2005년 25.7억 달러로 급증했다. 직접 투자액(FDI)는 150억 달러가 넘고, 러시아와 함께 재래식 무기를 수단에 공급하고 있다. 89년 남부유전지대에서 북부 홍해의 수출항을 잇는 1500km의 송유관을 단 1년 만에 건설해 놓은 것도 중국정부였다.
이런 탓에 중국은 유엔이나 미국의 개입이 탐탁치 않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주도해 "유엔 주도로 다르푸르 사태를 해결한다"는 안보리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중국은 찬성하지 않고 기권했다. 알바시르 대통령의 배짱의 이면에는 중국의 지원이 있음은 물론이다.
석유가격 인상은 수단경제를 바꿔놓고 있다. 이런 난리 통에도 2005년 경제성장률은 8%대를 지켰다. 한국에서는 LG가 수도 하르툼에 디지털 센터를 설치할 정도다.
부시 행정부로서도 수단은 '방치하기 힘든' 나라다. 기독교도 탄압 문제는 미국의 개입으로 비교적 중재에 성공한 만큼 1월1일 이후 미국의 '새 카드'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해법의 실마리가 생길 수도 있다.
미 언론은 먼 훗날의 일이라는 전제 아래 '수단문제 해결=경제제재 해제=미국 석유자본의 진출'이라는 등식을 거론하고 있다. 수단이 석유자원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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