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의 스콧 스탠젤 부대변인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이라크 최고 법원의 교수형 판결 확정에 대해 26일 이렇게 짤막하게 논평했다.
이라크 헌법에 따르면 사형집행은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재가가 나면 30일 이내에 총리가 집행을 명령하게 된다. 이라크 정부는 이미 교수형 집행 시설 및 보안대책을 마련중이며 사전 예고없이 사형을 집행한뒤 시신을 공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미 행정부 지도부는 이라크 국내 사법절차란 점 때문에 공개적 언급을 삼갔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세계은행 총재 등 후세인 제거에 앞장섰던 강경파들도 코멘트를 아꼈다.
하지만 미국 내부에선 조기 사형집행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조용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에 사형이 선고된 죄목인 두자일 마을 시아파 주민 학살 사건과 별개로 쿠르드족 수만명 학살혐의에 대한 재판이 아직 진행중이다. 후세인이 처형된뒤에도 재판은 계속될 수 있으며, 내년 4월이면 이라크 법률상 사형이 금지되는 만 70세가 되므로 조기에 사형이 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지만, 조기 사형집행이 미국의 국익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국제 인권단체는 변호인 접견권, 불공정한 법관선임, 반대 심문권, 공개재판 원칙 위배 등 재판 절차를 문제삼고 있어 후세인을 교수형한다면 '승자를 위한 재판' '정치적 재판의 희생양'이라는 비난이 거세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만약 실제 사형이 집행된다면 2001년 9·11 테러 하루뒤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테러와의 전쟁은 알 카에다에만 국한하면 안된다"며 후세인 제거를 공식 안건으로 제기한지 5년4개월 만에 '후세인 제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더 거슬러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부터 시작된 후세인과 미국의 극과 극을 오간 26년간의 애증관계도 막을 내리게 된다.
1968년 쿠데타에서 핵심역할을 한 공로로 승승장구하다 1979년 대통령직을 승계한 후세인이 미국의 주요 관심인물로 떠오른 것은 1980년 이란과의 전쟁으 일으킨뒤 부터였다. 미국은 대외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으나 이란의 견제세력으로서 후세인의 존재를 내심 반겼다.
1984년초 이라크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국제사회가 들끓자 미국도 1984년 3월 공개 성명을 발표해 이라크를 비난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비밀문서들에 따르면 조지 슐츠 국무장관은 성명 발표 며칠뒤 이라크 외교관들을 만나 "미국은 화학무기 사용을 엄격히 반대하지만 이라크와의 우호관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전혀 줄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럼에도 후세인이 서운함을 감추지 않자 슐츠 장관은 당시 제약회사 경영자였던 럼즈펠드를 바그다드로 보내 "미국의 우선 관심사항은 화학무기 보다는 이라크와의 관계개선"이란 메시지를 전달했다.
럼즈펠드는 앞서 1983년 12월에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공개리에 이라크를 방문해 후세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당시 이라크 정부는 "후세인 대통령은 럼즈펠드 특사의 방문을 매우 기뻐했으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는 감사메모를 미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8년 이란과 휴전협정을 맺은 후세인이 중동의 맹주가 되겠다는 야망을 노골화하면서 미국과 갈등이 시작됐다. 후세인은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했으나 1991년 1월 미군 주도의 연합군에 패퇴했다.
이어 1993년 걸프전 전승 기념식 참석차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쿠웨이트를 방문한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암살 기도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은 후세인을 지목했다. 이후 유엔의 경제제재, 미국과 영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압박속에서 후세인과 미국의 증오는 최고조로 끓어올랐다. 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세를 불려나가던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후세인을 냉전종식이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제1의 공적으로 공개리에 규정했다. 네오콘들은 9·11 이후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침공을 감행했다. 나중에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여부에 대한 정보조작과 과장 사실이 드러났지만 월포위츠 당시 국방부 부장관 등은 "후세인이 9.11테러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최대 50% 정도되며, 대량살상무기를 지금 현재 보유하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후세인이 권좌에 있는한 대량살상무기 획득 및 확산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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