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베티 포드 여사는 26일 포드 전 대통령의 사망 사실만을 간단히 발표했다. 그가 언제 어디서 사망했으며 사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포드 전 대통령은 1월 폐렴을 앓았으며 최근 두 차례 심장 치료를 받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지 않고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된 보기 드문 행운의 주인공이었다. 행운의 첫 단추는 1973년 10월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부패 혐의로 사임하면서 끼워졌다. 1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당시 하원 공화당 지도자였던 그를 부통령으로 전격 임명한 것.
당시 공화당 내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나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처럼 쟁쟁한 거물 정치인들이 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은 의외로 포드 의원을 선택했다. 닉슨 전 대통령은 훗날 회고록에서 쟁쟁한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그를 부통령으로 임명한 것이 ‘인간적인 (친밀한) 관계’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1년이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했던 두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져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 대통령이 중도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포드 부통령은 헌법에 따라 대통령 직을 승계해 닉슨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대신하게 됐다.
포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은인이나 다름없는 닉슨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의회에 나가 선서하고 증언하는 곤욕을 치렀다. 닉슨 사면이 가져 온 따가운 여론은 그가 1976년 대선에서 패배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
그럼에도 훗날 역사는 포드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불필요한 국론 분열을 막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는 것. 이로 인해 그는 2001년 5월 ‘케네디 용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포드 대통령은 재임 기간이 짧았고, 두드러진 업적도 남기지 못했다. 재임 기간 66건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이 중 12건에 대해서는 의회가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75년 그의 재임 기간에 남베트남이 패망함으로써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최종 실패로 끝을 맺기도 했다.
1976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한 그는 이듬해 895일의 길지 않은 백악관 생활을 마쳤다.
퇴임 후 그는 공화당 전당대회 참석과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활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로스앤젤레스 동쪽 랜초미라지의 저택에서 보냈다. 그는 역시 93세를 일기로 2004년 타계한 레이건 전 대통령과 함께 가장 장수한 미국의 전직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27일 미국 텍사스 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연말 휴가를 보내던 중 포드 전 대통령의 부음을 접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분열과 혼돈에 빠진 시기에 대통령이 되어 국민이 백악관을 다시 신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분”이라고 그를 추모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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