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의 한일 국교정상화 이듬해 일본은 '건국기념일(전설상의 초대일왕 즉위일)'을 제정했다. 1978년 중국과 우호평화조약을 맺은 다음해에는 '원호법(元號· 메이지, 헤이세이 등 일왕 즉위에 따라 해를 세도록 규정한 법)'을 제정했다.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일과 쇼와(昭和) 일왕의 사죄 이듬해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전후 처음으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잇따라 방일해 공동선언을 한 이듬해에는 '국기 국가법'이 제정됐다.
시계추처럼 오가는 사죄와 망언의 반복도 마찬가지다. 사실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비롯해 일본은 한국에 여러 차례 사죄했다. 그러나 직후에는 어디선가 반드시 망언이 터져 나와 사죄의 본뜻을 무색하게 하곤 했다.
일본은 왜 이처럼 아시아를 향해 사죄와 망언을 되풀이하는 걸까. 아시아와 일본의 진정한 화해는 어려운 걸까. 와카미야 주간은 이런 의문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우익의 반성을 촉구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언론인이다. 이틀에 걸쳐 그로부터 한일의 미래를 위한 진솔한 얘기를 들었다.
-왜 '이듬해의 법칙'이 나타났다고 보나.
"전후 일본에 아시아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과 일본인으로서 긍지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동거해왔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마음처럼 집단으로서의 일본인도 그렇다. 화해하고 사죄하더라도 자기 민족의 긍지와 역사를 모조리 부정당하는 느낌이면 반발하게 된다."
-그게 일본인의 이중성 아닐까.
"어느 민족이건 역사에는 빛과 그늘이 있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가 빛의 한순간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잘못을 했다. 그것이 그림자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그림자 쪽을 스스로 반성하면 역으로 빛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만 한국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너무 그림자 쪽에만 초점을 맞춰 비난하면 일본인들도 순순히 인정하기보다는 '우리도 빛났던 시절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아이들도 '넌 왜 그리 못됐냐'고 야단만 치면 정말 불량소년으로 성장하지 않는가. 일본을 향해 좀 여유 있는 대응을 바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일본의 그런 정서를 부추겼다고 할 수 있는가.
"그 나름의 이유는 있었겠지만 사려 깊지 못했다. 결국 중국 한국의 이해를 얻지 못했으니…. 겨우 태동한 동아시아 공동체 움직임을 얼어붙게 했고 한일간에도 한일공동선언, 한류, 월드컵 공동개최 등 양국우호를 위한 좋은 재료들이 무색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새 추도시설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해놓고 국내 사정만으로 진행하지 않은 것은 더 나빴다. 그리고는 '야스쿠니 참배가 뭐가 나쁘냐'고 한다면 한국 중국은 당연히 반발한다."
-총리의 신사참배에 일면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야스쿠니 신사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할머니가 도쿄(東京)에 올라오면 맨 먼저 들르는 관광코스 중 하나였다. 전쟁당시 보통 일본인들은 야스쿠니에 모셔지는 것으로 알고 희생돼갔다. 야스쿠니가 변질한 것은 1978년 이후다. A급 전범 14명 때문에 300만 명이 모셔진 곳에 가지 말라는 것은 보통 일본인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얘기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중국과 한국에 어느 정도 사과했으니 참배해도 좋을 거라고 오산했다. 자민당 내 기반이 없는 그로서는 야스쿠니 참배 하나로 여러 불만세력을 일시에 잠재울 수 있기도 했다."
-되풀이되는 망언을 접하며 한국은 일본 전체를 불신하게 된다.
"어느 쪽이라도 좋으니 발상의 전환이라고나 할까, 정치력을 보여줬으면 한다. 가령 망언을 일삼는 사람들을 지목해 한국으로 초대하면 어떨까. 당신 말을 들어볼 테니 대화를 해보자며…. 그러면 그들도 조금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반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대화를 청하는 것이다."
-개인 차원이야 피해자가 어른스러울 수 있지만 나라 대 나라의 관계는 다른 것 아닌가.
"정치에서는 역설의 원리가 통한다. 사실 아베 총리니까 취임 직후 중국 한국부터 방문해도 반발이 없었다.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씨가 총리가 됐다면 오히려 힘들었을 거다. 나는 마오쩌둥으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일본 사회당 인사가 방문해 '과거 일본이 지독한 짓을 했다. 미안하다'고 하자 '아니다. 우린 일본 덕도 봤다. 일본의 침략이 있었기에 공산당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이쪽이 더 미안해진다. 좀더 큰 눈으로 보자."
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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