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뒤 문이 열리자 수백 명으로 늘어난 행렬은 쇼핑센터 안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쇼핑객들은 각자 미리 점찍어둔 가게로 뛰어 들어가 ‘복주머니’를 집어 들고 계산을 치렀다. 복주머니란 유통업체가 인기 품목 몇 가지를 하나의 쇼핑백에 미리 담아 놓았다가 정가보다 싸게 한정 판매하는 상품.
일본에서는 매년 연초가 되면 예외 없이 이런 풍경이 빚어진다. 2일 일제히 시작되는 대형 백화점들의 복주머니 판매 행사 때는 문 앞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올해 등장한 복주머니의 가장 큰 특징은 1947∼49년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를 집중 겨냥했다는 점.
다카시마야는 ‘청춘 시절의 정열을 다시 한번’이라는 주제로 유명 가수의 지도를 받아 자신의 CD를 제작할 수 있는 복주머니를 준비했다.
이세탄 다치카와(立川)점은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방이 딸린 2007만 엔(약 1억6000만원)짜리 단독 주택을 내걸었다.
소고 요코하마(橫濱)점은 닛산자동차의 신형 승용차와 여성용 고급시계를 한 묶음으로 한 300만 엔(약 2400만 원)짜리 ‘꿈 복주머니’를 판매한다.
대부분의 대형 백화점이 이처럼 단카이 세대를 겨냥한 고가(高價)상품으로 승부를 거는 이유는 이들이 올해부터 무더기 정년퇴직을 하면서 소비의 주역으로 떠오를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회사 인간’으로 불리는 단카이 세대는 일본의 고도성장 신화를 이뤄낸 생산 주역으로 지금까지는 일하기에 바빠 소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퇴직을 눈앞에 두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들의 젊은 시절 문화 코드였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통기타 학원과 요리 학원에 다니는 초로의 신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는 구매력도 갖추고 있다. 올해부터 3년간 이들이 받을 퇴직금만 해도 최대 50조 엔에 이른다.
일본과 아시아 경제의 미래를 읽기 위해서는 이들의 변신에서 눈을 떼선 안 될 것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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