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새해 첫 경제일성이 ‘공장증설 불허’라니…

  • 입력 2007년 1월 6일 03시 03분


“어디 사세요?”

“시로가네(白金)에서 삽니다.”

이런 대답이 나오면 많은 일본인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부럽다는 시선을 보낸다. 시로가네는 도쿄(東京)를 대표하는 최고급 주택지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2005년 11월 시로가네 1정목(丁目·행정구역 명칭)에는 4년에 걸친 재개발사업으로 지상 42층짜리 고급 아파트와 26층짜리 초현대식 사무용 빌딩이 완공됐다.

높은 분양가로 화제를 모은 고급 아파트 인근에는 3∼6층짜리 건물 5채도 들어섰다. 얼핏 보면 사무용 빌딩 같지만 실상은 금속을 가공하고 공구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이는 공장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일본도 1990년대까지는 균형 발전과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수도권에서 공장을 내쫓기 바빴다. ‘공업 등 제한법’을 만들어 도쿄만 일대의 공장 신증설을 사실상 금지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이런 규제가 기업과 대도시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2002년 ‘공업 등 제한법’을 폐지했다.

일본 정부의 정책 전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경제산업성은 4일 공해 방지를 위해 공장 신증설을 제한해 온 ‘공장 입지법’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일률적으로 공장 신증설 기준을 정하지 않고 기초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해 지방의 공장 유치를 돕기 위해서다. 수도권을 억누르기보다는 지방을 활성화함으로써 균형 발전을 꾀한다는 발상인 셈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노무현 대통령은 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수도권 내 공장 증설은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대희 대통령경제정책수석비서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끊임없이 분산정책을 추진하는 추세”라고 부연 설명했다.

청와대가 주장하는 국토의 균형 발전에 반대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규제 완화를 통해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방법을 더 고심했더라면 어땠을까.

최근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서라면 기업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사정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새해 경제정책 일성으로 “공장 못 짓게 하겠다”고 강조하는 나라가 어디에 또 있는지 궁금하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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