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화점 점원 시절 숨을 헐떡이며 몇 마일을 달려가 거스름돈 6센트를 되돌려줬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일화는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 하지만 링컨 전 대통령도 정적들로부터 ‘두 얼굴의 거짓말쟁이’라고 비난받았다.
대통령도 거짓말을 한다.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더욱이 대통령에겐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는 고상한 이유도 추가된다.
그렇다면 ‘신뢰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우는 어떤가. 월간지 애틀랜틱 신년호가 역대 미국 대통령의 거짓말 사례들과 비교하며 부시 대통령의 거짓말 행태를 분석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하루에 많아야 4시간, 적게는 한두 시간밖에 일을 할 수 없는 건강 상태였다. 그러나 세계는 그가 건강하고 굳건하게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고 있다고 믿었다.
물론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자리를 지키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한 사례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계나 경력에 관한 역대 대통령의 근거 없는 허풍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경우가 다르다. 미국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중대한 정책을 결정하면서 모호한 말로 속였다는 이유 탓에 위기에 직면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대다수 미국인은 부시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속였다고 믿는다. 이제 문제는 그가 거짓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속였고 그가 거짓말을 했음을 인정하느냐가 됐다.
부시 대통령은 르윈스키 스캔들로 거짓말쟁이가 된 전임 클린턴 대통령과 달리 ‘정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가 어쩌다 ‘가장 지위가 높은 거짓말쟁이(prevaricator in chief)’로 위상이 추락해 버렸을까.
따져보면 그의 거짓말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과거 자신이 했던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 백악관 보좌진이 당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컨대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중간선거 패배 직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경질을 발표하면서 “이미 선거 전 결정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기자들에게 경질설을 부인한 바 있던 그는 “럼즈펠드 장관과 최종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라고 나중에 변명했다.
이런 부시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 △지적 호기심이 부족해 충분한 정보 없이 결정해 버린다 △늦게 거듭난(born-again) 기독교 신자로서 절대적인 확신을 앞세운다 △보좌진에 엄청난 충성심을 요구하는 탓에 거슬리는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등의 해석이 많다.
특히 그는 “지나친 신념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부시 대통령은 스스로 진실만 얘기하는 사람으로 믿고 있으며 거짓말탐지기 통과도 자신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문 칼럼이나 사설을 읽지 않는 이유를 “보다 낙관적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낙관과 환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사실 환상에 싸인 낙관주의가 이라크 정책을 떠받쳐왔고 그 결과는 냉혹하다. 그럼에도 그는 “뒤늦은 깨달음은 지혜가 아니며 사후 수정은 전략이 아니다”고 강변한다.
이런 자기기만(self-deception)이 낳는 결과는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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