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반팔 전투복 차림에 콧수염을 길렀던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그의 이미지는 미국의 강경우파에 혐오의 대상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오르테가 정부에 대항하는 콘트라 반군 지원 자금을 마련키 위해 역시 적이었던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판매했다. 이 사실이 발각나면서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레이건 대통령을 위기로 몰아붙였고 그는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어 대통령에 오른 조지 H 부시 대통령(현 부시 대통령 아버지)은 1989년 중미 정상회담에서 오르테가 대통령을 "가든파티장의 초대받지 않은 동물"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 오르테가가 니카라과 대통령으로 10일 다시 취임했다. 1990년 대통령 선거 패배로 물러난 뒤 17년만의 복귀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과 니카라과 간에 오가는 기류는 80년대와 전혀 다르다. 부시 대통령은 8일 직접 전화를 걸어 취임을 축하하면서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오르테가 대통령도 과거사를 제쳐두고 중남미 국가들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힘쓰겠다고 화답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미 행정부 경축사절 참석한 마이클 리빗 보건장관에게 "귀하의 방문이 양국 간 잦은 교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감사를 표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80년대 행한 실수들, 즉 농장소유권 박탈과 같은 오류들로부터 교훈을 배웠다. 사유재산권을 존중할 것이다. 우리는 많이 성숙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와 평화, 화해다"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하이메 모랄레스 니카라과 부통령도 9일 로이터통신 회견에서 "새 니카라과 정부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같은 급진적인 좌파 경제정책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유재산과 기업활동 자유, 시장경제를 전적으로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랄레스 부통령은 콘트라 반군 지도자 출신이지만 오랜 정적인 오르테가와 화해하고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
그러나 외견상의 변화 조짐이 실질적 화해와 협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10일 취임식에는 차베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15일 취임하는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당선자를 필두로 중남미권 좌파지도자들이 많이 참석했다.
미국 내에선 오르테가의 권력복귀가 중남미 좌파 세력권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사실 미 행정부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오르테가를 낙선시켜야 한다고 니카라과 국민들에게 공개 호소한 바 있다.
올해 61세인 오르테가 당선자는 1979년 7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이끌고 소모사의 43년 독재통치를 종식시켰으며 1984~1990년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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