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펠로시 vs 폴리

  • 입력 2007년 1월 15일 03시 00분


“겁에 질린 그녀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자신이 가르치던 한국의 어린 여학생 6명을 ‘근로정신대’에 보냈던 과거를 참회하는 일에 반생을 바친 일본인 이케다 마사에(池田政枝) 씨가 작년 말 사망했다. 이로써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증언할 사람이 또 줄었다. 일본 패전 후 제자들을 찾아 용서를 구한 이케다 씨는 자국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일본 정부는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일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일본군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되지 않도록 집중 로비를 펴고 있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를 촉구하는 이 결의안은 2000년 이후 세 번 제출됐다. 두 번은 상임위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다. 지난해 세 번째 제출된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본회의에는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결의안 처리가 번번이 무산되는 배경에는 막강한 금력(金力)을 앞세운 일본의 ‘작업’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워싱턴의 대형 로비회사 5, 6곳과 계약을 하고 이 결의안을 비롯해 자국의 이해(利害)가 걸린 문제들에 대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 작년엔 14년간 하원 원내대표를 지낸 밥 미셸 전 의원을 한달 6만 달러에 고용해 결의안 통과를 저지했다.

▷일본 정부는 이달 중 네 번째 상정될 결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이번엔 하원의장과 주일(駐日) 미국대사를 지낸 민주당 거물 토머스 폴리를 로비스트로 고용했다. 로비 채널을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꾼 것이다. 일본이 미 의회에 입김이 센 폴리 전 하원의장을 앞세운 것은 상황이 그만큼 다급함을 말해 준다. 톰 랜터스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도했을 정도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높고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로비로 역사를 덮으려는 일본이 이겨서는 국제 정의(正義)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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