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심에… 돈의 유혹에…아이들은 또 총을 잡는다

  • 입력 2007년 1월 16일 03시 01분


이라크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3월 바그다드 인근에서 목격된 AK-47 자동소총을 멘 10대 소년.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인구의 51.3%를 차지하는 이라크에서 살상무기에 노출된 소년들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라크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3월 바그다드 인근에서 목격된 AK-47 자동소총을 멘 10대 소년.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인구의 51.3%를 차지하는 이라크에서 살상무기에 노출된 소년들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3년 7월 콩고민주공화국 이투리 지방의 주도인 부니아 시에서 동생을 업은 한 소녀가 소년병 모집 중단을 촉구하는 포스터 아래에 서 있다. 이 지역에서는 통치권을 차지하기 위한 부족 간 무장충돌이 발생해 500여 명이 사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3년 7월 콩고민주공화국 이투리 지방의 주도인 부니아 시에서 동생을 업은 한 소녀가 소년병 모집 중단을 촉구하는 포스터 아래에 서 있다. 이 지역에서는 통치권을 차지하기 위한 부족 간 무장충돌이 발생해 500여 명이 사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암마르(17). 사담 후세인 정규군 소속이던 아버지를 따라 사격장에 자주 다녔다. 총소리엔 익숙하다. 지난해 11월 이웃집 대학생 형이 시아파 마흐디 민병대에 납치됐고, 시체로 발견됐다. 시체를 곁에 두고 토악질을 하던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는 서방 기자에게 “두 명의 시아파에게 방아쇠를 당겼다”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한다. 그는 이제 용감한 ‘소년병(兵)’이다.

아흐메드 알리(10). 바그다드에 사는 그는 어느 날 ‘미소 띤 아저씨’에게서 보따리 하나를 어딘가에 놓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35달러를 받았다. ‘물건’을 놓고 돌아선 직후 폭탄이 꽝 터졌고 그 충격에 나가떨어졌다. 중년의 여성과 아이가 쓰러졌고 그 아저씨는 사라졌다.

이라크전쟁에 참가한 미군 사망자가 3000명을 넘어섰는지가 중요한 뉴스가 돼 버린 사이, 전쟁과 테러가 빚어낸 비극의 씨앗이 ‘잊혀진 세대’로 불리는 이라크 청소년들에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뉴스위크는 22일자 최신호에서 “100만 명가량의 이라크 소년들이 부모나 집을 잃는 등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보았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일부는 미래의 성전(聖戰)에 나설 전사로 자라게 될 것이다. 소년병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남부아시아 등 무장분쟁이 계속되는 곳에선 예외 없이 납치→학대→소년병 양산→폭력 격화라는 폭압적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미래의 지하디스트(성전의 전사)=이라크에서 소년전사는 여러 갈래로 키워진다. 암마르 군처럼 복수가 이유이거나, 알리 군처럼 돈의 유혹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테러범의 손발이 되는 수도 있다. 또 가족이 해체된 뒤 자신을 받아줄 ‘거리의 조직’을 따라 총을 잡는 경우도 있다.

뉴스위크는 현장 취재를 통해 어린이들이 살상무기에 노출된 현실을 고발했다. 무장 민병대원들이 실물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장난감 총을 어린이들에게 뿌렸고, 10세 초반의 어린이가 AK-47 자동소총을 자유롭게 분해 조립하는 장면을 전했다.

사정이 날로 악화되면서 미국 부시 행정부는 치안 확보와 함께 이라크에서 청소년을 위한 교육 및 일자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 국방부가 지난해 2월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DR)를 통해 “테러와의 전쟁은 ‘기나긴 전쟁(Long War)’이 될 것이며, (이슬람 청소년 문제를 잘못 다루면) 미국은 이슬람 전체를 상대하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라크 청소년의 문제를 초기부터 지적한 것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씨였다.

그는 전쟁 초기부터 저서 ‘경도와 태도’를 통해 “미국의 중동 개입은 잠재적 반미주의자인 청소년에게 일자리를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청소년 정책이 실패하면 미래를 잃어버린 청소년이 ‘모든 게 미국 탓’이라는 이슬람 성직자의 주말 설교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해 왔다.

문제는 테러와 무관한 어린이조차 내전상태가 심화되면서 등교 포기가 늘어나고, 정상 교육의 기회가 사라져 간다는 점이다.

뉴스위크는 검문소 1000개가 설치된 바그다드 시내에서 학생들이 등굣길에 6, 7곳의 검문소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고, 이런 부담이 등교 포기로 이어지는 현실을 소개했다.

이라크 교육부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350만 명의 초등학생 가운데 30%만이 학교에 다닌다. 1년 전 등교율은 75%였다.

▽내전의 희생물 납치=최근 한국에서도 개봉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의 소년병이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소년병은 대체로 오랜 내전으로 정규군에 맞설 병사가 부족한 반군에서 많이 생겨난다. 시에라리온이 배경이 된 영화에서는 멀쩡한 어린이가 무장괴한에 납치되고, 협박 속에 자기도 모르는 살인을 반복해 저지르면서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전사로 거듭난다. 콜라 초콜릿 위성TV 카드 게임과 같은 순간적 재미가 이들에게 주어지는 살육의 대가다.

유엔은 18세 미만의 소년병 징집을 불법화하는 유엔협약을 2002년 발효시켰고, 이들의 구제를 위한 결의안을 번번이 채택했다. 그러나 유엔의 영향력 부족으로 실질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2004년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30개국에서 20만 명의 어린이가 소년병으로 차출됐고, 최근 10년간 10만 명의 소년병이 목숨을 잃었다. 1990년대 이후 크메르루주(캄보디아), 타밀엘람해방호랑이(스리랑카), 신의 저항군(우간다), 빛나는 길(페루)이 대표적인 소년병 부대로 통한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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